동아시아에서 태학은 한(漢) 무제 이래 중국 역대 왕조의 대표적 중앙 관학이다. 학계에서는 고구려의 태학 역시 당시 중국의 남조와 북조의 여러 나라, 특히 전진(前秦) 혹은 동진(東晉)과의 교류 속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고구려의 태학은 고구려말까지 지속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의 태학은 국자감(國子監)의 6학 가운데 하나로서 별개의 학교이다.
태학이 처음 설립된 곳은 당시의 국도(國都)였던 국내성(國內城)으로, 지금의 지린성[吉林省] 지안시[集安市])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나 중국측의 기록을 종합할 때, 귀족 자제들을 대상으로 오경(五經) 등 경전을 박사와 조교가 가르쳤을 것으로 보인다.
태학은 경당(扃堂)과 함께 고구려의 대표적 학교이자 한국사 최고(最古)의 학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