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에 전하는 우리 나라 최초의 학교이다. 고구려는 국초부터 문자를 사용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미 부여시대부터 사용하던 한자를 건국 초부터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구려는 중국과 접경하고 있고 일찍부터 대륙문화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한자의 사용은 건국 초부터 있었을 것이나, 학교설립의 기록은 건국 후 400여년이 지난 뒤에야 나타나고 있다.
문자의 사용이 건국 초부터 있었다면 학교설립도 거의 비슷한 시기였을 것으로 생각되나 기록상으로는 소수림왕 2년에 태학을 설립, 자제를 교육하였다고 되어 있다. 소수림왕은 그동안 중국과 계속된 전쟁 및 적대관계를 중단하고 전진(前秦)과 우호관계를 맺으면서 대륙문물을 수용하여 국가체제를 정비하고 국력배양에 힘썼다.
그리하여 불교를 수용하게 되고 국립교육기관으로서 태학을 설립하게 된 것이다. 태학은 귀족자제의 교육기관으로 유교의 경전과 문학·무예 등을 교육하였다. 당시 경당(扃堂)이 사립교육기관이며 지방에도 설치되었던 것에 비하여 태학은 서울에 설치된 국립학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