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학

  • 교육
  • 제도
  • 삼국
372년, 고구려에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교육기관.
제도/법령·제도
  • 제정 시기372년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4년
  • 안경식 (부산대학교 교육학과)
  • 최종수정 2025년 11월 04일
삼국사기(권13) / 고구려본기 동명왕 원년조 미디어 정보

삼국사기(권13) / 고구려본기 동명왕 원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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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태학은 372년 고구려에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교육기관이다. 기록상 고구려 최초의 학교이자 한국 최초의 학교로서 관료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박사나 조교가 교수자였고, 귀족 자제들이 학생이었으며, 오경 등 유교 경전을 가르쳤을 것으로 짐작된다. 경당과 함께 고구려의 대표적 학교였으며, 고구려 멸망 전까지 지속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정의

372년, 고구려에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교육기관.

설립 배경

태학의 설립은 중앙집권체제의 정비와 관련이 있다. 3세기까지 고구려의 주된 인재선발 방식은 천거제였고, 왕족이나 부(部) 체제에 속한 인물들이 천거되었다. 사회 발전에 따라 부 체제가 점차 해체되면서 각 부의 지배세력이 중앙의 귀족으로 편입되었고, 중앙집권적 정치 체제가 형성되던 시기에 새로운 관리양성 제도가 필요했다. 이에 소수림왕은 372년 불교의 수입, 373년 율령의 반포와 함께 유교식 인재양성 제도로서 태학을 설립하게 되었다.

연원

동아시아에서 태학은 한(漢) 무제 이래 중국 역대 왕조의 대표적 중앙 관학이다. 학계에서는 고구려의 태학 역시 당시 중국의 남조와 북조의 여러 나라, 특히 전진(前秦) 혹은 동진(東晉)과의 교류 속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고구려의 태학은 고구려말까지 지속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의 태학은 국자감(國子監)의 6학 가운데 하나로서 별개의 학교이다.

내용

태학이 처음 설립된 곳은 당시의 국도(國都)였던 국내성(國內城)으로, 지금의 지린성[吉林省] 지안시[集安市])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나 중국측의 기록을 종합할 때, 귀족 자제들을 대상으로 오경(五經) 등 경전을 박사와 조교가 가르쳤을 것으로 보인다.

의의

태학은 경당(扃堂)과 함께 고구려의 대표적 학교이자 한국사 최고(最古)의 학교이다.

참고문헌

  • 원전

  • - 『삼국사기』

  • 단행본

  • - 안경식,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의 유학교육사상」(『한국유학교육사상대계Ⅴ』, 한국국학진흥원, 2006)

  • - 『한국교육사연구』(대명출판사,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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