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1월 28일 경상북도 제1지구 7개 고교 입학시험 실시 후 경북고등학교 응시자들의 부모들이 수험생들로부터 정답이 암시되어 있다는 말을 듣고, 1월 29일 오후 2시경 학교에 몰려가 재시험을 요구함으로써 사건이 드러나게 되었다.
사건이 표면화되자 대구지방검찰청에서 수사에 들어갔고, 입시문제를 누설, 학부모로부터 90만원을 받았던 신생프린트사 주인 이영복, 필경사 박병태와 경북고등학교 필경사 송희천, 경북고등학교 교련교사 이용상, 경운중학교 사환 이종대를 구속하였다.
수사 결과에 따르면 필경사 박병태는 1월 중순 전기 고교 입학시험에 부정 문제지를 만들 것을 구상하고, 친구인 송희천은 이용상 교사에게 부탁하였으며, 이 교사는 다시 경운중학교 사환 이종대에게 학생 포섭을 의뢰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 부정 시험지는 제1지구 공동출제군인 대구의 명문 경북고등학교를 비롯하여 경북여자고등학교, 대구고등학교, 대구여자고등학교, 대구공업고등학교, 경북사대부속고등학교, 영천여자고등학교 등 도내 7개 고교 입시에 사용되어 모두 1만 4,000여 명이 이 시험지로 시험을 치렀다.
12개 시험 과목 총 180문항 중 국어, 생물을 제외한 10개 과목 140개 4지선다형 문제가 정답 항목의 숫자는 정자로 반듯한 모양이고, 틀린 3개의 답은 숫자 모양이 비뚤어지게 쓰여 있어 응시자가 정답을 쉽게 가려낼 수 있게 프린트 되어 있었다.
경상북도교육위원회는 검찰에 의해 사건의 전모가 발표된 후인 1월 30일, 구자춘 경상북도지사를 비롯하여 김주만 교육감, 구용현 장학실장 등 관계자들이 모여 수습 대책회의를 열어 관련된 7개교의 입시를 전면 백지화하고 재시험을 결정하였다.
문교부는 관리 소홀로 경북도교위 학무국장, 중등과장, 장학계장, 제1지구 출제위원장과 출제위원 9명 전원 등 15명을 직위해제하였다. 이에 김주만 교육감은 1월 31일 책임을 지고 사표를 냈고, 일주일 후에 어머니 집에서 자살하였다.
제3대 경상북도교육감 김주만의 자살은 당시 연이어 터진 입시 부정사건과 황폐화한 사도 타락에 대한 경종을 울린 사건으로 언론에 크게 부각되었고, ‘사도의 죽음’으로 사회에 파문을 일으켰다. 부의금을 기금으로 한 주만장학회가 만들어지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