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사건은 1980년 서울대학교에서 「반파쇼 학우투쟁 선언문」을 발표한 학생들을 간첩으로 몰아 구속하거나 강제 입대시킨 시국 사건이다. 1980년 12월 11일 서울대학교 도서관 앞에서 「반파쇼 학우투쟁 선언문」을 발표한 학생들을 북한의 사주를 받은 간첩으로 몰아 고문 조사를 진행하여 9명을 구속하고 90여 명을 강제 입대시킨 사건이다. 신군부 출범 이후 침체된 학생운동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된 사건이며, 이후 학림사건, 부림사건 등이 연달아 일어나게 되었다.
1980년 5 · 18광주민주화운동 이후 지하로 접어든 학생운동이 1980년 9월, 대학의 개학과 함께 다시 일어나게 되었다. 당시 우리나라의 운동권을 주도한 서울대학교 운동권은 크게 보면 전면적 투쟁을 주장하는 측과 준비론적 입장에서 시위 자제를 주장하는 측의 두 입장이 있었다.
이 가운데 준비론적 입장을 지지하는 측에서 이후 학생운동은 소모적인 시위 만능주의를 배격하고 기층 민중운동에 주력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반파쇼 학우투쟁 선언문」을 12월 11일 발표하였다.
공안당국이 이 선언문의 내용을 문제 삼았고, 북한의 사주를 받은 간첩사건으로 몰고 갔다. 이에 12월 13일 각 신문들이 사회면 톱으로 「서울大 캠퍼스에 불온유인물」 등의 기사를 내보내며 내용과 용어가 학생의 한계를 넘었으며, 민주 기본질서를 부정할 우려가 있다고 보도하였다.
당국은 남명수, 현무환, 김명인 등 관련자를 비롯하여 재학생, 졸업생, 군 복무자에 이르기까지 100여 명을 소환하여 고문을 하며 조사를 진행하였고, 그 결과 9명 구속, 90여 명을 강제 입대시켰다. 그중 일부는 운동권 친구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게 한 이른바 ‘녹화사업’에 동원되어 프락치 활동을 강요받기도 하였다.
신군부 출범 이후 침체된 학생운동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된 사건이며, 이후 학림사건, 부림사건 등이 연달아 일어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