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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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명이 한 팀을 이루어 공을 상대편의 바스켓에 던져 많이 넣은 수로 승패를 겨루는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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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5명이 한 팀을 이루어 공을 상대편의 바스켓에 던져 많이 넣은 수로 승패를 겨루는 경기.
내용

각각 5명으로 구성되는 두 팀이 한 개의 공을 서로 차지하여 지상으로부터 3.05m에 장치된 바스켓에 공을 던져 넣어 득점으로 승패를 겨룬다. 농구는 속도감과 긴장감이 있는 실내스포츠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경기방식은 전후반 20분씩 경기를 하며 전후반 사이에 10분 동안 휴식시간을 가진다.

경기장은 사이드라인이 24∼28m, 앤드라인이 13∼15m이며, 경기의 시작은 주장의 토스로서 자기 팀의 바스켓을 정한 뒤, 양 팀이 자기 위치에 서서 주심의 점프볼 토스(jump ball toss)로 시작된다. 경기규칙은 공을 손으로 다루어야 하고 공을 가지고 걸어서는 안 되며, 몸을 부딪치지 않도록 원칙을 정해놓고 있다.

경기는 정해진 시간 안에 많은 득점을 하는 팀이 승자가 되는 것인데, 득점은 필드 스로(field throw)에 의하여 바스켓에 볼이 들어가면 2점, 3점라인 밖에서 바스켓에 볼을 넣으면 3점, 그리고 파울에 의한 프리 스로에 의하여 바스켓에 들어가면 1점을 얻는다. 또, 공격측 선수가 상대방의 프리드로 라인 안에서 3초 이상 머물렀을 때 바이올레이션(violation)으로 인정, 상대편에게 볼을 준다.

심판은 주심 1명과 부심 1명으로 구성된다. 경기기술은 캐칭(catching)·패싱(passing)·드리블(dribble)·슈팅(shooting)으로 나뉜다.

농구는 1891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스프링필드(Springfield)에 있는 YMCA학교의 네이스미스(Naismith,J.A.)에 의하여 창안되었는데, 그는 미식축구의 속도감과 긴장감을 즐기되 실내의 제한점을 고려한 13개 조항의 기본규칙을 기초로 하였다. 농구경기는 비가 올 때나 추운 겨울에도 체육관 안에서 경기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많은 호응을 받아 전 미국에 보급되기 시작하였는데, 특히 YMCA가 농구보급에 커다란 구실을 담당하였다.

최초의 농구팀은 1892년 조직된 미국 YMCA학교팀이며, 그 뒤 육군팀과의 대전을 시작으로 제네바(Geneva)·아이오와(Iowa)·미네소타(Minnesota)·예일(Yale)·트리니티(Trinity) 등의 대학 간의 경기를 통하여 발전하였으며, 1904년에 열린 제3회 세인트루이스올림픽대회에서 미국선수들이 농구경기를 시범종목으로 소개함으로써, 미주·유럽·라틴아메리카에 널리 보급되었다.

1932년에 열린 제10회 로스앤젤레스올림픽대회 때 세계농구연맹(Fe'de'ration Internationale de Basketball Amateur, FIBA)이 창설됨과 더불어 통일된 경기규칙이 제정되었으며, 1936년에 열린 제11회 베를린올림픽대회 때부터 올림픽대회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1976년에 열린 제21회 몬트리올올림픽대회에서는 여자종목이 추가되었다. 1999년 현재 세계농구연맹에는 208여 개 국가가 가맹되어 있다.

우리나라에 농구가 처음 소개된 것은 1907년 한성기독청년회 초대 총무였던 미국인 선교사 질레트(Gillet, P.)에 의해서이며, 1916년 미국인 반하트(Barnhart)가 기독청년회 간사로 취임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지도와 보급이 시작되었다. 1920년 3월에는 재경 서양인팀과 기독청년회팀 간의 시합이 있었는데, 그 뒤 각급 학교에서 농구부를 창설하였고 전조선농구대회를 통하여 발전이 계속되었다.

1925년에는 서양인 여자들과 이화학당 여학생들의 농구경기가 열려 우리 나라 여자농구경기의 시초가 되었으며, 1926년에는 일본 와세다대학팀을 중앙기독교청년회에서 초청하여 경기를 가짐으로써 첫 국제경기의 길을 열었다. 1936년에는 전일본남자농구선수권대회에서 연희전문학교 농구팀이 우승을 거두었으며, 제11회 베를린올림픽대회 일본 대표선수로 장이진(張利鎭)·이성구(李性求)·염은현(廉殷鉉) 등 세 선수가 선발되었다.

1945년 12월 17일 대한농구협회가 조직되고, 1947년 국제농구연맹에 정식으로 가입하였으며, 1948년 제14회 런던올림픽대회에 최초로 출전하여 28개국 중 8위의 성적을 거두어 한국농구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 뒤 올림픽경기대회와 아시아경기대회 등에 계속 출전하는 동안 한국농구는 많은 발전을 하게 되었다. 1967년 4월 15일부터 체코 프라하에서 거행된 제5회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한 한국대표팀은 처녀출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준우승을 차지하여 한국농구를 세계에 빛냈다.

또한 같은 해 8월 27일부터 일본 동경에서 유니버시아드대회가 개최되었는데, 우리 나라는 여자팀이 우승, 남자팀이 준우승을 차지하였다. 1969년과 1972년 사이의 4년간은 아시아 정상의 자리를 확고히 지켰으며, 1973년 8월 16일부터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우리 나라 여자팀은 동메달을 차지하였다. 1979년 4월에는 한국농구 80년사상 처음으로 서울에서 제8회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를 개최하였으며, 이 대회에서 2위를 차지하였다.

또한, 1982년 일본 동경 요요기[代代木] 국립체육관에서 폐막된 아시아여자농구선수권대회(ABC)에서는 일본을 대파하고 우승을 차지하기도 하였다. 같은 해 제9회 아시안게임에서 남자농구가 중공을 누르고 우승의 영광을 차지하였으며, 1984년 4월 19일에 개최된 제8회 아시아청소년농구선수권대회에서는 남자가 우승, 여자가 준우승을 차지하였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에서 개최된 제23회 올림픽대회에서는 여자농구가 올림픽 참가사상 최초로 은메달을 획득하였으며, 1986년 10월에 서울에서 개최된 제10회 아시아경기대회에서 남녀 모두 준우승을 하였다.

1997년에 개최된 아시아농구선수권대회에서는 중국을 물리치고 우승하였으나 1998년 12월 태국 방콕에서 개최된 제13회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남녀팀 모두 준우승에 그쳤다. 이후 2002년 부산에서 개최된 아시아경기대회에서 남자팀이 결승전에서 중국을 제치고 우승하였다.

참고문헌

『농구』(정성태, 동양문화사, 1982)
『농구』(문교부, 서울신문사, 1975)
『대한농구협회자료』(대한농구협회, 1948)
Coach’s Complete Guide to Winning Basketball(La Grand Parker Publishing Company Inc.,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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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정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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