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훤(甄萱)의 막내아들이다. 『삼국사기』견훤전과 『고려사』태조 18년조에 의하면 935년 3월에신검(神劍)이 파진찬(波珍飡) 신덕(新德)·영순(英順) 등과 더불어 부왕 견훤을 금산사(金山寺)에 감금시키고 장사 30인으로 지키게 하였다.
그런데, 그 뒤 3개월이 지난 6월에 견훤은 술을 빚어 장사 30명을 만취시키고, 막내아들인 능예와 딸 쇠복(衰福 : 衰는 哀의 誤字)과 첩 고비(姑比) 등과 함께 금성(錦城 : 지금의 전라남도 羅州)으로 도망하여 나와 사람을 보내어 고려 태조를 만나보기를 청하였다.
태조는 이 말을 듣고 장군 유금필(庾黔弼) 등을 보내어 해상으로 오도록 하여 후하게 대접하고, 견훤을 상보(尙父)로 삼았다. 그런데 『삼국유사』후백제 견훤전에서는 견훤이 후궁의 연소남녀 2인과 시비(侍婢) 고비녀(古比女)와 나인(內人) 능우남(能又男, 또는 能乂男) 등과 감금되었는데, 4월에 술로써 수졸(守卒)을 취하게 한 뒤 금성으로 탈출하였다고 하였다.
『삼국사기』의 능예와 쇠복이 『삼국유사』의 연소남녀 2인에 해당하며, 『삼국사기』의 첩 고비가 『삼국유사』 시비에 해당하니 『삼국사기』의 능예는 『삼국유사』의 나인 능우(예)남과는 별개의 인물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