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국가지정문화재 국보급 제61호. 성의 둘레 6,913척, 성벽 높이 13척. 이 성은 고려 성종 12년(993) 거란의 제1차 침입을 막아낸 성곽으로 유명하다. 이후 북방의 방위를 견고히 하기 위하여 서희(徐熙)의 지휘하에 3년간(994∼996)에 걸쳐 쌓았다.
험준한 자연지세를 이용하여 쌓은 성벽은 능하골을 중심으로 사인봉 봉우리의 좌우 능선을 타고 돌았는데, 그 형태는 마치 광주리를 남쪽으로 기울여 놓은 듯하며, 동북쪽이 높고 서남쪽이 낮은 천연의 요새를 이루고 있다. 성벽은 사각추 형태로 다듬은 돌로 벽돌 쌓듯이 규모 있게 잘 쌓았다. 동서남북에 1개씩 4개의 성문이 있었는데, 남문만 홍예형(虹霓形)이고 나머지는 모두 눈썹모양이다.
현재는 동문과 서문터만 남아 있으나 모든 성문터에는 옹성(甕城 : 성문의 앞을 가리어 적으로부터 방어하는 작은 성)이 있다. 성벽 위에는 성가퀴[城堞 : 성 위에 낮게 쌓은 담]를 설치하였으며, 사인봉 북쪽 산마루에는 장대(將臺)와 봉수대(烽燧臺)가 있던 자리가 남아 있다. 성안에는 23개의 우물과 1개의 늪이 있었다고 전하며, 지금도 병영 · 무기고 · 창고 등의 터가 있다.
이 성은 전략적으로 보아 우리나라 서북방 제1선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의주 홍화진(興化鎭)에서 제2선인 안주에 이르는 중간지점에 위치해 있다. 1010년(현종 1) 거란군의 제2차 침입 때 능한산성 일대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는데, 양규(楊規)의 지휘하에 6천의 고려군이 거란의 대병력을 섬멸하는 승리를 거두었다. 또 1627년(인조 5) 후금의 침략(정묘호란) 때에는 정주 · 선천 · 곽산 등 평안도 일대의 백성들이 이 능한산성을 중심으로 하여 적에게 타격을 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