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등은 이찬(伊飡)이었다. 후백제왕 견훤에게는 여러 명의 부인이 있어서 아들이 10여 명이나 되었다. 그 중에서 넷째아들 금강(金剛)은 몸이 크고 지혜가 많아 견훤이 특히 사랑하였고 왕위를 그에게 물려줄 뜻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에 둘째아들 양검(良劍)은 강주도독(康州都督)으로, 그리고 셋째아들 용검(龍劍)은 무주도독(武州都督)으로 가 있었고, 큰아들 신검(神劍)만이 홀로 곁에 있었다.
이 때 능환은 사람을 시켜 강주와 무주의 양검·용검 등과 음모하고 935년(견훤 44) 3월 파진찬 신덕(新德)·영순(英順) 등과 함께 신검에게 권하여 견훤을 금산사(金山寺)에 유폐시키고, 사람을 보내어 금강을 죽이고 신검이 스스로 대왕을 칭하게 하였다.
금산사에 유폐되어 있던 견훤은 금성(錦城: 지금의 전라남도 羅州)으로 도망쳐, 고려 태조에게 투항하였다. 그 뒤 태조가 후백제를 정벌하고 신검 이하 모두를 항복받고 곧 용서하여 주었지만, 신검으로 하여금 반역하게 한 능환만은 죄를 용서받지 못하고 죽임을 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