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여름 발견되었다. 조사발굴 사업은 휴암동 쪽에서 진행되었는데, 다리의 첫머리 부분 구조물은 10㎝ 정도의 두께로 덧쌓인 자갈과 모래층 밑에서 드러났다. 골조물의 대부분은 길이 670㎝, 너비 38㎝, 두께 26㎝ 가량 되는 밤나무 각재이다.
다리의 입구 부분에는 첫머리 부분에서부터 밖으로 부채살처럼 퍼진 깔판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으며 본래의 모습이 잘 남아 있다.
다리의 첫머리 부분에는 교각과 교각 사이에 놓였던 골조가 땅에 묻힌 채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강 건너편 천호동 쪽에서는 2개의 교각기둥이 강바닥에 박힌 채로 남아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다리의 첫머리 부분과 입구가 연결된 부분의 동쪽에서는 다리 구조물의 하나인 등불대터가 발견되었다.
이 터는 바닥을 다진 다음에 귀틀모양으로 쌓아올렸으며, 그 크기는 동서 112㎝, 남북 154㎝이다. 여기에 쓰인 목재는 두께가 17㎝, 너비가 10∼14㎝ 되는 것들로서, 서로 든든히 맞물려 있었다. 다리의 길이는 375㎝, 강 복판에서 너비는 9m 정도이다.
이 다리는 쇠못이나 꺽쇠를 비롯한 그 어떤 쇠붙이도 쓰지 않고, 모든 이음새를 사개물림(네 갈래로 오려내 맞추는 일)하여 견고성을 보장하고 있다.
이 다리 유적과 함께 고구려시대의 질그릇조각·기와조각들도 발견되었다. 이 다리의 북쪽 3∼4㎞ 반경에 당시의 왕궁인 안학궁(安鶴宮)과 대성산성(大城山城)이 있고, 서쪽에는 청암리토성(淸巖里土城)이, 동쪽에는 고방산성(高芳山城)이 있다.
그리고 다리의 남쪽에는 미림벌이 펄쳐졌는데 다리가 놓인 방향으로 곧바로 가면 동명왕릉(東明王陵)이 있으며, 서남쪽으로는 낙랑벌이 있다.
이 다리는 고구려가 수도를 평양으로 옮긴 427년(장수왕 15) 이후에 쌓은 것으로 보이는데,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