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修德寺)의 말사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범우고(梵宇攷)』 · 『가람고(伽藍考)』 등에는 ‘대련사(大連寺)’로 기록되어 있다. 이 절은 656년(의자왕 16)에 백제의 고승 의각(義覺)과 도침(道琛)이 창건하였으며, 845년(문성왕 7) 무염(無染)이 중창하였다.
대련사라고 한 것은 가까이에 있는 임존성(任存城) 안에 연당(蓮塘)과 연정(蓮井)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고려시대의 역사는 전하지 않으며, 조선시대는 1648년(인조 26)과 1691년(숙종 17), 1745년(영조 21)에 각각 중수하였다. 그 뒤 보월(普月)이 1836년(헌종 2) 수선당(修禪堂)을 중수하였고, 1843년 노전(爐殿)을 신축하였으며, 1849년 법당을 중수하여 사찰의 면모를 일신하였다.
이와 같은 역사는 1975년 군청의 보조금으로 법당인 원통보전(圓通寶殿)을 해체, 복원하였을 때 대들보 속에서 발견된 도광 29년 기유(道光二十九年己酉, 1849) 3월 16일에 쓴 대련사법당중수상량문이 발견됨으로써 확인되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전과 노전 · 산신각 · 요사채 등이 있다. 이 중 1984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인 극락전은 1975년까지 원통보전이라 하였으나, 해체 · 보수 때 이 건물 뒤쪽에서 ‘극락보전’이라고 쓴 현판이 발견되어 법당의 이름을 바꾸었다. 이 밖에도 법당 앞뜰에는 1984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대련사 삼층석탑이 있다.
지대석(地臺石) 위에 기단과 탑신부를 올린 이탑의 전체 높이는 약 2.5m에 불과하지만, 이 절의 오랜 역사를 뒷받침해 주는 귀중한 유물이다. 절 앞에는 오래된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는데, 왼쪽 것은 수령 700년이 훨씬 넘는 고목이다. 절에서 1.5㎞ 거리에는 백제 부흥군이 나당연합군의 공격을 물리친 임존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