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 후기, 환곡을 거두어들일 때 나누어준 곡식 대신 다른 곡식으로 징수하는 것.
제정 목적
내용
쌀과 잡곡 등은 곡물의 가치가 달랐기 때문에 호조(戶曹)에서 쌀과 다른 곡물 간의 교환 비율을 정하였는데 이를 ‘호조식(戶曹式)’ 혹은 ‘호식(戶式)’이라 하였다. 『속대전』 「호전」 창고조에서는 재해를 만난 해에는 환곡을 다른 곡식으로 대신 납부하도록 하면서 각 곡식의 교환 비율을 규정하였다.
쌀 1섬(1섬=약 180ℓ)에 콩은 2섬, 벼[정조(正租)]는 2섬 7말(1말=약 18ℓ) 5되(1되=약 1.8ℓ), 팥은 1섬 7말 5되로 교환하였다. 팥 1섬에 콩은 1섬 4말, 찧지 않은 조는 1섬 5말을 교환하고, 콩 1섬에 팥은 11말 2되 5홉(1홉=약 0.18ℓ), 찧지 않은 조는 1섬 3말을 교환하였다.
또한 벼 1섬에 콩은 12말을 교환하게 하였다. 핍쌀[직미(稷米)]과 기장쌀[서미(黍米)], 녹두와 팥, 옥수수[직당(稷唐)]와 거친 벼[황조(荒租)], 밀[진맥(眞麥)]과 벼는 같은 양으로 갚게 하였다. 쌀과 좁쌀은 같은 비율이고, 쌀 대신 좁쌀을 징수할 때는 모곡(耗穀)을 징수하지 않았다. 쌀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쌀은 벼와 보리의 2.5배의 가치를 지녔다.
함경도 북관(北關)에서는 호식 외에도 토식(土式)이 통용되었다. 토식에 따르면, 좁쌀 1섬을 찧지 않은 조 · 보리는 2섬으로, 피[직(稷)] · 귀리 · 메밀은 3섬으로 교환하도록 하였다. 이 지역에서 호식의 경우 좁쌀 1섬은 찧지 않은 조 · 보리와는 2섬 7말 5되, 피 · 귀리 · 메밀과는 3섬 11말로 교환되었다. 즉 찧지 않은 조 · 보리의 1말은 토식에서는 좁쌀 5되로, 호식에서는 4되로 교환된다. 피 · 귀리 · 메밀 1되의 경우, 토식에서는 좁쌀 4되이고 호식에서는 약 2.7되가 된다.
호식보다 토식에서 잡곡의 가치를 높게 잡았던 이유는 함경도 지역에서 주로 먹는 곡식이었기 때문이다. 함경도에서는 이처럼 2가지 규정이 있었으므로 잡곡을 쌀로 만든다거나 다른 곡식으로 전환할 때 혼란이 발생하였다. 이 과정에서 중간 착복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규정과는 달리 실제 운영에서는 곡물 간의 곡물 교환 비율을 무시하고 쌀과 잡곡을 1:1의 비율로 교환하는 단대봉(單代捧)이 시행되기도 하였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 『속대전(續大典)』
- 『순조실록(純祖實錄)』
- 『정조실록(正祖實錄)』
단행본
- 문용식, 『조선후기 진정과 환곡운영』(경인문화사, 2000)
- 정약용 저, 다산연구회 역주, 『역주 목민심서 3』(창작과비평사, 1981)
논문
- 양진석, 「17, 18세기 환곡제도의 운영과 기능 변화」(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9)
인터넷 자료
- 『조선왕조실록사전』(http://dh.aks.ac.kr/sillokwiki)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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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논밭에 부과되는 조세.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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