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북한 평양직할시 대성구역 대성산(大城山) 남부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 대성산성의 남쪽 문(門). 성문·산성.
내용
대성산성은 고구려의 중요한 군사시설로 이용되었으며 427년(장수왕 15) 고구려가 수도를 평양으로 옮긴 후부터는 정치적·군사적으로 더욱 중요한 의의를 가지게 되었다.
남문은 축대와 그 사이에 열린 문길, 축대 좌우의 적대(敵臺 : 성문 양 옆에 외부로 돌출시켜 옹성과 성문을 적으로부터 지키는 방형의 대), 그리고 그 위의 문루로 이루어졌다.
남문의 총높이는 19.5m로, 문길은 凸형이고 성벽 위에는 평여장(平女墻 : 성벽 위에 담장처럼 쌓아 사격에 이용하는 장벽)을 마련하고 거기에 사혈(射穴 : 총구멍)과 타구(垛口 : 성의 여장에 활이나 총을 쏠 수 있게 갈라놓은 자리)를 만들어놓았다.
기둥은 배흘림기둥인데, 가운데 네 기둥은 2층까지 올려뻗었고 두공은 첨차(檐遮)를 두 단으로 고이고 두공 사이에는 ○자 활개와 1자고임을 받친 형태로 되어 있다.
통천장에 우진각지붕을 씌웠다. 문루의 안팎은 고구려벽화에 나오는 우아한 무늬들로 치장하여 건축물의 효과를 더욱 높여주었다. 1978년에 새로 복구한 바 있다.
참고문헌
- 『북한의 문화유적순례』(양태진, 백산출판사, 1995)
- 『북한의 자연지리와 사적』(통일원,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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