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음력 6월 김예진(金禮鎭)·김경하(金景河) 등 20여 명이 모여 상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는 단체로서 대한독립일신청년단 결사대를 조직하였다.
단장에 김경하, 부단장에 최봉국(崔奉國), 검찰부장 겸 서무에 최담(崔淡), 부재무에 김내구(金乃拘), 통신원에 이경일(李景一) 등이 선출되었으며, 그밖의 단원으로는 박인찬(朴麟瓚)·김이형(金利瀅)·안상순(安相舜)·양제설(楊濟卨)·오창근(吳昌根)·명태린(明泰麟) 등이 있었다.
이들은, 첫째 신문 등 독서를 장려하여 지식을 계발하고, 둘째 조국에 헌신하며, 셋째 일제가 조작한 일체의 법규를 부인하고 민족자주독립정신에 부합하는 법규를 제정하고, 넷째 절대 비밀을 지키며, 다섯째 결사의 비밀을 누설하는 자는 죽음에 처한다는 강령을 정하였다.
장덕진(張德震)·안경신(安敬信) 등과 함께 평안도일대에서 임시정부와의 연락, 군자금 모금, 임시정부 간행물의 배포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들은 또한 일본경찰을 습격하고, 평안남도 도청에 폭탄을 던지는 등 과감한 활동을 펴기도 하였다. 1921년 5월 일본경찰에 탐지되어 단장 이하 단원 24명이 잇달아 붙잡힘으로써 일신청년단은 해체되었다.
한편, 주모자인 김예진은 중국으로 건너가 상해 등지에서 활동하다가 1926년 일본경찰에 붙잡혀 평양으로 압송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