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임시정부 내무부 총장 안창호(安昌浩) 등이 발기하고, 내무부로부터 인가를 받아 1919년 7월 설립되었다.
회장에는 이희경(李喜儆), 부회장에는 김성겸(金聖謙), 이사에는 여운형(呂運亨)이 선출되었으며, 1922년손정도(孫貞道)가 회장에 선출되었다. 미주(美洲)·노령(露領) 등지와 국내 각지에 지부와 지회를 설치하였다.
이들의 활동은 평상시는 병원을 설립하여 질병의 예방과 국민보건에 기여하고 간호원 및 구호원을 훈련하여 재난 때 대비하는 한편, 전시는 부상자 가료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1920년 2월 간호원양성소를 설치하였다. 한편, 국권이 상실된 처지에서 독립운동을 방관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 회의 국제적 지위 향상과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자체의 선전활동과 국제적 유대를 도모하려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는 적십자회가 국제적인 기관인만큼 국제적십자연맹에 가입한다는 것은 임시정부가 국제적 승인을 얻는 문제와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에, 국제적십자연맹에 꾸준히 교섭하였으나 국제적 승인을 얻지 못하였다. 그러나 대한적십자회의 국내외 활동은 광복 후 대한적십자사 설립에 귀중한 보탬이 되었다. → 대한적십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