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기 ()

목차
불교
인물
일제강점기 범어사 주지, 임시정부 고문 등을 역임한 승려.
이칭
담해(湛海)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60년(철종 11)
사망 연도
1933년
출생지
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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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범어사 주지, 임시정부 고문 등을 역임한 승려.
내용

성은 이씨(李氏). 호는 담해(湛海). 울산 출생. 어려서 사서삼경을 익혔고, 18세에 출가하여 동래 범어사(梵魚寺)에서 연운(蓮雲)의 제자가 되었으며, 30세에 우봉(友峰)의 법맥을 이었다. 그 뒤 총섭(摠攝)이 되었다가 본사 주지로 임명되었으며, 범어사의 전각을 중수하고 단청하였다.

그러나 불사(佛事)에만 얽매여서 수도하지 못함을 자책하고 1905년 양산의 내원선원(內院禪院)에서 하안거(夏安居)를 마친 뒤 선지식(善知識)을 찾아 금강산 등을 순례하면서 3년 동안 수도하다가 다시 내원선원에서 용맹정진하였다.

이때 이사불이(理事不二)의 경지에 이르게 되자 다시 불사에 착수하여 『선문촬요(禪門撮要)』와 「권왕문(勸往文)」 수천부를 만들어 배포하였고 『지장경(地藏經)』을 국역한 뒤 1,000여부를 인쇄하여 보시하였으며, 내원암의 사적비를 세우기도 하였다.

1919년 무렵 범어사의 경산(擎山) 성월(惺月) 등이 중국 상해의 임시정부가 경제적으로 몹시 어렵다는 것을 알고 상당한 금액을 상해에 헌납하자 임시정부는 경산 성월 등과 더불어 그를 고문으로 추대하였다.

만년에는 적광토굴(寂光土窟)에 머무르며 선을 닦았으며, 병을 얻자 시자를 불러 “이제부터 대중공양에 참여하지 못할 것”이라고 한 6일 뒤인 7월 8일에 입적하였다. 나이 74세, 법랍 56세로 화장한 뒤 광명이 하늘로 뻗쳤다고 한다. 문도가 부도를 세웠으며, 남전(南泉)의 글을 받아서 1934년에 비를 세웠다.

참고문헌

『남천선사문집(南泉禪師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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