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허주(虛舟). 어려서 조계산 송광사(松廣寺)에 들어가 삭발하고 홀로 선정(禪定)을 닦으며 도학을 성취하였다. 주지직을 위임하면 부득이 임무를 수행하였지만, 언제나 조용한 곳을 찾아 수도하기를 좋아하였다.
송광사·선암사(仙巖寺)·칠불암(七佛庵)·백양사(白羊寺)·물외암(物外庵)과 내장산 원적암(圓寂庵), 가지산(伽智山) 내원암(內院庵) 등 여러 사찰을 순방하며 수도하였다. 이름이 널리 퍼지자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불러 국가를 위하여 철원 보개산(寶蓋山)지장암(地藏庵)과 고산(高山)운문사(雲門寺)에서 기원하게 하였다.
그의 도성(道聲)이 알려지니 수많은 학인들이 그의 문하에 모여들었고 많은 신도들이 그를 따랐다. 칭찬과 비난에 아랑곳하지 않고 수도 정진하고 제자를 키워 경순(敬淳)과 더불어 당대의 가장 뛰어난 선지식으로 불렸다. 나이 83세로 입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