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서도관(尙書都官)과 같은 기관이다. 이미 현종 원년에 도관원외랑이 확인되고 있으므로 연원을 성종대로 볼 수 있다. 인원과 품계를 정하여 정5품의 낭중 2인과 정6품의 원외랑 2인을 두었다.
1275년(충렬왕 1) 몽고의 내정간섭에 의하여 관제가 개편되면서 낭중은 정랑(正郎), 원외랑은 좌랑(佐郎)으로 바뀌었으나, 1298년 충선왕이 한때 집권하면서 구제로 환원되었다. 1308년에 3부(三部 : 選部·民部·讞部)체제로 바뀜에 따라 감전색(監傳色)·전옥(典獄)과 함께 언부에 병합되었다.
그러나 1310년(충선왕 2) 노비로서 양민임을 자처하여 소송하는 사례가 많아지게 되어 언부만으로는 그 일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자, 다시 도관을 독립시키고 정랑과 좌랑을 두었으며, 1356년(공민왕 5) 공민왕의 개혁 때 문종연간의 구제로 환원되었다.
1360년 원외랑을 2인에서 4인으로 늘리고, 2년 뒤 정4품직인 총랑(摠郎)을 새로이 두었으며, 낭중을 정랑, 원외랑을 좌랑으로 하는 등 인원의 증가와 함께 관직의 칭호가 바뀌었다.
그러나 이 때 새로이 증치된 총랑은 1367년에 없어졌으며, 정랑은 직랑(直郎), 좌랑은 산랑(散郎)으로 개칭되었고, 3년 뒤 다시 정랑과 좌랑으로 고쳐 불리게 되었다. 이속(吏屬)으로는 문종 때 정한 주사 6인, 영사 6인, 서령사(書令史) 6인, 계사(計史) 1인, 기관 5인, 산사 1인 등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