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총도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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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사
제도
고려시대 병력동원을 위하여 설치되었던 임시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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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시대 병력동원을 위하여 설치되었던 임시관서.
내용

고려 말기 정규병력만으로는 극렬해진 왜구의 침입과 노략질에 대처할 수 없게 되자, 1373년(공민왕 22) 개경5부의 인민으로 구성된 방리군(坊里軍)을 조직하여 왜구의 침략에 대처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대호와 중호의 경우는 5호(戶), 규모가 적은 소호의 경우는 10호가 한 단위가 되어 왜구의 방어에 출동한 방리군의 점검을 위하여 도총도감을 설치하였으나, 오히려 개성부민에게 많은 부담을 줌으로써 1388년(우왕 14)에 이를 혁파하자는 주장이 나오게 되었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특수관부연구(高麗特殊官府硏究)」(문형만, 『부산사학』 9,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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