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고려 말과 임진왜란 의승군 활동 이후 조선 후기, 최고위 승려에게 주어진 승직.
설치 목적
임무와 직능
휴정에 이어 8도 도총섭을 지낸 사명 유정(四溟惟政, 1544~1610)은 비록 실질적인 직책은 아니었지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제수되기도 했다. 도총섭과 총섭은 승병의 공을 평가하여 조정에 보고하였고, 승군 활동을 한 대가로 발급된 선과첩(禪科帖)을 승려들에게 나누어주는 실질적인 권한을 가졌다.
변천사항
도총섭의 경우 1624년(인조 2) 남한산성을 쌓을 때 벽암 각성(碧巖覺性: 1575~1660)을 8도 도총섭으로 임명하여 승군을 동원하고 그 관리를 담당하게 하였다. 남한산성 안에는 개원사(開元寺) 등 산성을 방어하는 거점으로 활용된 9개의 사찰이 있었다. 1711년(숙종 37) 북한산성이 완성되면서 중흥사(重興寺)를 비롯해 승영(僧營) 사찰 11곳이 건립되었는데 계파 성능(桂坡聖能)이 북한산성 8도 도총섭을 맡아서 활약하였다.
정조 대에는 수원 용주사(龍珠寺)가 창건되고 8도 도승통(都僧統)을 중심으로 한 5규정소(糾正所) 체제가 가동되었으나 정조 사후에 이르러 유명무실해졌다. 19세기에 이르면, 교단을 통솔하는 기구나 승직의 권위는 약화된다. 총섭이라는 직책도 남발되어 큰 규모의 사찰에서 주지의 상급 또는 동급으로 임의로 사용되었다. 다만 남한산성과 북한산성의 의승군제와 8도 도총섭 직책은 그대로 유지되다가 갑오개혁(1894~1896) 때에 혁파된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조선왕조실록』
- 『남한지(南漢志)』
- 『북한지(北漢誌)』
단행본
- 김용태, 『조선후기 불교사 연구』(신구문화사, 2010)
- 이능화, 『조선불교통사』(신문관, 1918)
논문
- 고영섭, 「조선후기 승군제도의 불교사적 의미」(『한국사상과 문화』 72, 한국사상문화학회, 2014)
- 김용태, 「조선후기 남한산성의 조영과 승군의 활용」(『한국사상과 문화』 78, 한국사상문화학회, 2015)
- 김용태, 「임진왜란 의승군 활동과 그 불교사적 의미」(『보조사상』 37, 보조사상연구원, 2012)
- 여은경, 「조선후기 산성의 승군 총섭」(『대구사학』 32, 대구사학회, 1987)
인터넷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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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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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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