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건연대 및 창건자는 미상이나, 남한총섭(南漢總攝)이 있던 오규정소(五糾正所)의 하나로서, 군기(軍器)·화약·승병이 집결한 사찰이었다. 이 절에 관한 역사는 『남한지(南漢志)』에 간략히 언급되어 있다.
1637년(인조 15) 대장경을 실은 배가 서호(西湖)에 닿았는데, 사람은 없고 그 함 위에 ‘중원개원사간(中原開元寺刊)’이라고 쓰인 책함만 있었다. 그를 전해들은 인조는 전국에서 개원사라는 이름의 절을 찾아 봉안하도록 함으로써, 대장경을 금란보(金襴褓) 열벌로 싸서 당시 유일의 개원사였던 이 절에 봉안하였다.
1666년(현종 7) 이 절의 화약고에서 불이 일어나 불길이 매우 심하였으나, 갑자기 바람이 반대로 불어 대장경은 타지 않았다. 1694년 겨울에도 불이 나서 5칸 누각이 전소될 위기에 있으나 많은 비가 내려 불이 꺼져, 누각 안에 봉안되어 있던 대장경과 무기들은 화재를 면하였다.
또한, 이 절에는 『소학지남(小學指南)』·『천의소감(闡義昭鑑)』·『천의소감언해』·『역전(易傳)』·『주역본의(周易本義)』·『서집전(書集傳)』·『시집전(詩集傳)』·『대학장구(大學章句)』·『논어집주(論語集註)』·『중용장구(中庸章句)』·『통감절요(通鑑節要)』·『십구사략통고(十九史略通攷)』·『삼략(三略)』·『병학지남(兵學指南)』·『천자문(千字文)』·『택당집(澤堂集)』·『만휴집 萬休集』 등의 장판(藏板)이 있었다.
1636년에는 숭은전(崇恩殿)에 봉안하였던 원종의 영정을 이곳으로 옮겨 봉안하였다가, 병자호란이 끝난 이듬해에 다시 숭은전으로 옮겼다. 이 절에 관한 기록과 폐사연대 등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1970년 화재로 대부분의 건물이 불타버렸다. 선효화상이 신도와 함께 10여년에 걸쳐 건물을 새로 지어 현재 일주문을 비롯하여 대각전과 불심각, 화현전 등 요사를 갖추게 되었다.
개원사지가 1989년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개원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