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 후기, 정조 대에 용주사 주지와 도승통을 지냈고 남북한산성 팔도도총섭을 겸임한 승려.
가계 및 인적사항
주요 활동
학문과 저술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원전
- 『備邊司謄錄』
- 『日省錄』
단행본
- 김용태, 『조선후기 불교사 연구』(신구문화사, 2010)
- 이능화,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신문관, 1918)
- 정해득, 『정조시대 현륭원 조성과 수원』(신구문화사, 2009)
논문
- 김준혁, 「정조시대 용주사 창건과 정치적 활용」(『지방사와 지방문화』 23-2, 역사문화학회, 2020)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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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사도 세자의 묘. 정조 때 영우원을 고친 것으로, 후에 사도 세자를 장조로 추존(追尊)하고부터 ‘융릉’이 되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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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법령, 수계(授戒), 관정(灌頂) 따위의 의식이나 사원(寺院)의 운영을 맡아보는 승려의 직무.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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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승려들로 조직된 군대.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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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조선 시대 사도 세자의 빈(1735~1815). 정조의 어머니로서 남편 사도 세자가 참변을 당한 영조 38년(1762)의 참사를 회고하여 ≪한중록≫을 지었다. 고종 때에 헌경 왕후로 추존되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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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임금이 탄 수레를 호위하여 따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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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경전이나 교리 및 속학을 널리 아는 승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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