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일

  • 종교·철학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 정조 대에 용주사 주지와 도승통을 지냈고 남북한산성 팔도도총섭을 겸임한 승려.
이칭
  • 보경(寶鏡)
인물/전통 인물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도승통, 팔도도총섭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3년
  • 김용태 (동국대학교 교수, 지역불교 및 불교사 연구(조선시대 불교사)
  • 최종수정 2024년 11월 29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사일은 조선 후기 정조대에 용주사 주지와 도승통을 지냈고 남북한산성 팔도도총섭을 겸임한 승려이다. 법호는 보경이다. 정조가 부친 사도세자의 현륭원을 조성하면서 재궁으로 용주사를 창건하고 도화주이자 주지인 사일을 팔로의 도승통으로 임명했다.

정의

조선 후기, 정조 대에 용주사 주지와 도승통을 지냈고 남북한산성 팔도도총섭을 겸임한 승려.

가계 및 인적사항

법호는 보경(寶鏡), 법명은 사일(獅馹)이며, 전라남도 장흥군 가지산 보림사(寶林寺) 출신이다.

주요 활동

1789년에 정조는 부친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으로 이장하여 현륭원(顯隆園)을 조성하고, 이듬해 그 재궁(齋宮)으로 용주사(龍珠寺)를 창건했다. 사일은 용주사 불사의 재원을 모으는 도화주(都化主)를 맡았고, 완공 후에는 8도의 도승통(都僧統)으로 임명되었다. 도승통은 당시 불교계에서 최고 권위를 갖는 승직으로서 남 · 북한산성의 8도 도총섭(都摠攝)을 겸임하게 했다. 정조가 현륭원에 행차할 때 용주사 승군이 호위를 맡았으며, 1795년 화성에서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행할 때도 국왕의 어가 행렬을 호종했다.

학문과 저술

사일은 해남 대둔사(大芚寺)의 12대 종사이자 강학의 대가인 연담(蓮潭) 유일 (有一)과 교류하였다. 영남의 학승 인악(仁岳) 의첨(義沾)과 친분이 깊어, 의첨은 용주사 불상 개안식 때 참여하여 「불복장봉안문(佛腹藏奉安文)」을 쓰기도 하였다. 다만 저술이 남아있지 않아 사일의 교학 이해나 선 수행의 내용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상훈과 추모

용주사가 창건된 1790년 10월에 정조는 사일을 도승통으로 임명하면서 ‘호종연교(護宗演敎) 보혜정각(普慧正覺) 엄정비니(嚴淨毗尼) 원융법계(圓瀜法界) 총지제방대법사(總持諸方大法師) 겸 팔로도승통(八路都僧統)’이라고 적힌 교지를 내렸다.

참고문헌

  • 원전

  • - 『備邊司謄錄』

  • - 『日省錄』

  • 단행본

  • - 김용태, 『조선후기 불교사 연구』(신구문화사, 2010)

  • - 이능화,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신문관, 1918)

  • - 정해득, 『정조시대 현륭원 조성과 수원』(신구문화사, 2009)

  • 논문

  • - 김준혁, 「정조시대 용주사 창건과 정치적 활용」(『지방사와 지방문화』 23-2, 역사문화학회, 2020)

주석

  • 주1

    :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사도 세자의 묘. 정조 때 영우원을 고친 것으로, 후에 사도 세자를 장조로 추존(追尊)하고부터 ‘융릉’이 되었다. 우리말샘

  • 주2

    : 법령, 수계(授戒), 관정(灌頂) 따위의 의식이나 사원(寺院)의 운영을 맡아보는 승려의 직무. 우리말샘

  • 주3

    : 승려들로 조직된 군대. 우리말샘

  • 주4

    : 조선 시대 사도 세자의 빈(1735~1815). 정조의 어머니로서 남편 사도 세자가 참변을 당한 영조 38년(1762)의 참사를 회고하여 ≪한중록≫을 지었다. 고종 때에 헌경 왕후로 추존되었다. 우리말샘

  • 주5

    : 임금이 탄 수레를 호위하여 따르다. 우리말샘

  • 주6

    : 경전이나 교리 및 속학을 널리 아는 승려. 우리말샘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