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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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인물
삼국시대 고구려 출신으로 일본에서 주로 활동하며 『일본세기』를 저술한 승려.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출생지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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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삼국시대 고구려 출신으로 일본에서 주로 활동하며 『일본세기』를 저술한 승려.
내용

도현(道顯)은 7세기 후반에 일본에서 활동하였던 고구려의 승려이다. 에도시대의 불교사서인 『본조고승전(本朝高僧傳)』에 의하면, 도현은 일본의 군신(君臣)이 불교를 숭상한다는 말을 듣고 조공선을 타고 일본에 건너왔다고 하였다. 또한, 그는 천지왕(天智王)의 명에 따라 다이안지[大安寺]에 머물면서 『일본세기(日本世記)』 약간 권을 찬술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다이안지는 본래 이름이 백제대사(百濟大寺)이며, 8세기 전반에 국가가 조영 및 경영 비용을 부담하였던 사찰이다. 따라서 도현이 일본에 건너가 머문 곳은 다이안지가 아니라 백제대사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백제 멸망 전에 일본으로 가서 당시 국제 사정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후지와라 노가마타리[藤原鎌足, 614~669]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정치, 군사고문의 역할을 하였다.

도현은 불교뿐만 아니라 유교에 밝은 학승이었다. 특히 그가 저술한 『일본세기』에는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의 영향을 받은 내용이 보이는데, 도현이 유학과 한학에도 조예가 깊었음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일본세기』 는 『일본서기(日本書紀)』의 「제명기(齊明紀)」와 「천지기(天智紀)」에 분주(分註)로 네 군데 인용되었다. 그 내용은 백제 멸망 원인과 신라 김춘추(金春秋)를 비판하는 내용, 복신(福信)이 왜에 글을 보내 백제 왕자 풍장(豊璋)의 귀국을 요청한 것, 고구려의 멸망과정, 후지와라 노가마타리의 사망 관련 기사 등이다. 이러한 기록은 중국이나 한국 측 자료에서는 볼 수 없는 내용이다. 따라서 『일본세기』의 사료적 가치가 작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본조고승전(本朝高僧傳)』
『등씨가전(藤氏家傳)』
『원형석서(元亨釋書)』
『일본서기(日本書紀)』
「일본서기에 인용된 도현의 일본세기」(박재용, 『한국고대사연구』47, 2007)
「高麗沙門道顯 ‘日本世記’ 補考」(加茂正典, 『所功先生還曆記念國書·逸文の硏究』, 2001)
「日本書紀考證二題-伊吉連博德書と日本世記」(志水正司, 『史學』44-3,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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