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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이나 재물을 가리키는 경제용어.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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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재산이나 재물을 가리키는 경제용어.
내용

돈은 국문 기록이 시작된 이래로 줄곧 ‘돈’이라고 표기되었고, 어형의 변화가 없었다. 방언에서도 다른 말을 쓰지 않는다. 다만 중부 방언에서는 돈을 둔이라고 발음한다. 돈의 어원은 짐작하기 어렵다.

돈은 ‘돈다’는 동사에서 유래하였고,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돌아다닌다는 뜻이라고 하기 일쑤이나, 민간 어원이라고 보아 마땅하다. 한자어로는 전(錢)이라고 한다.

≪훈몽자회 訓蒙字會≫에서부터 이 글자를 ‘돈 전’이라고 읽었다. ‘화폐(貨幣)’라는 말도 쓰인 내력이 오래된다. ‘금’이니 ‘황금’이니 하는 말도 돈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

속담에서는 돈의 위력을 강조하여 일컬으면서 못마땅하게 여기는 반응을 나타낸다. ‘돈이 양반’, ‘돈이 장사’, ‘돈이 제갈량’이라고 하며 돈의 힘이 크다고 한다.

‘돈이 많으면 장사 잘 하고, 소매가 길면 춤을 잘 춘다.’고 하여 사람의 능력이 오히려 중요하지 않게 된 사태를 지적한다. ‘돈만 있으면 처녀 불알도 산다.’,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 ‘돈만 있으면 개도 멍첨지라.’고 하는 데서는 돈의 위력을 강조하느라고 불가능한 상상을 하며 돈 때문에 세상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은근히 나타낸다.

돈이 없을 때 돈에 대해 말을 많이 한다. ‘돈 없으면 적막강산이요, 돈 있으면 금수강산이라.’고 한다. 그런데 돈 벌기는 힘들어 ‘돈 한 푼 쥐면 손에서 땀이 난다.’고 하고, ‘돈 나는 모퉁이 죽을 모퉁이’라고 한다.

‘돈 놓고 돈 먹는다.’는 말이 있듯이, 돈은 노력을 한다고 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밑천이 있어야 벌 수 있으며, 밑천을 굴려 돈을 버는 과정에서 온갖 비리를 저지를 수 있다.

그래서 ‘돈에 침 뱉을 놈 없다.’고 하지만, 돈 많은 사람을 존경하지는 않는다. 특히, 돈을 벌어 모으기만 하고 쓰지는 않는 구두쇠·자린고비·수전노 등은 비난과 풍자의 대상이 된다. 돈은 벌기보다 쓰기가 더 어렵다고 해서, ‘돈은 더럽게 벌어도 깨끗이 써라.’, ‘개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써라.’라고 한다.

돈에 집착하지 말아야 사람의 도리를 바르게 지킬 수 있다는 교훈도 여럿 있다.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교훈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최영(崔瑩)에게 남겼다 하여 널리 알려져 있다.

돈보다 사람이 소중하다는 경구는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나.’라고 하는 것이다. ‘돈 모아 줄 생각 말고 자식 글 가르쳐라.’는 말도 한다.

돈이 생기는 운수를 ‘재수(財數)’라고 한다. 재수는 ‘있다’, ‘없다’라고 말한다. ‘재수가 물밀 듯하다.’, ‘재수가 불일 듯하다.’라는 말은 재수가 있다는 것이고, ‘재수가 옴 붙 듯하다.’, ‘재수에 옴 올랐다.’는 말은 재수가 없다는 것이다.

재수가 있다는 것보다 없다는 것에 재미 있는 속담이 더 많다. ‘재수 없는 놈은 뒤로 자빠져도 코를 깬다.’고 한다. 이보다 더 길게 ‘재수가 없는 포수는 곰을 잡아도 웅담이 없고, 복 없는 봉사는 괘문(卦文)을 배워 놓아도 개좆부리 하는 놈도 없다.’고 하기도 한다.

재수는 운수라고 생각하여 점을 쳐서 알아내려고 하고, 신앙 행위를 통하여 얻으려고 한다. 무속의 굿에 재수굿이 있고, 불교에서도 재수발원이나 재수불공이 있다. 재수굿은 집안에서 하는 굿의 대표적인 형태의 하나이다. 병을 앓는 사람이 있다든가 누가 죽었다든가 하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서 하는 집안 굿은 대개 재수굿이다.

재수는 성주신이 관장한다고 믿어 집안의 신성한 장소인 대청에 모신 성주신을 위하는 재수굿을 정월 또는 시월에 한다. 근래에는 운수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사고 나지 않게 해 달라고 흔히 이 굿을 한다. 굿상에 돼지머리를 놓고 재수를 상징하는 돈을 헌납하는 것이 이 굿에서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무당이 소다리 둘을 잡고 재복(財福)을 긁어 들이는 시늉을 하기도 한다. 무당이 굿을 하면 구경하는 사람들까지도 돈을 굿상에 얹고, 걸고, 무당 얼굴에 붙이기도 한다. 무당에게 보수를 지불하는 방식인데, 그렇게 해야 돈 내는 사람에게 재수가 있다고 믿는다. 무당은 신령의 현신 자격으로 그 돈을 거두어들인다.

저승차사가 오면 음식을 대접하고, 신발을 마련해 줄 뿐만 아니라 돈으로 인정을 쓰는 절차도 있다. 무당이 저승차사 노릇을 하며 저승길을 갈 때 등에 붙이는 문서에도 돈이 꽂혀 있다.

돈은 저승에서도 힘을 발휘한다고 믿는 것이 흥미롭다. 죽어 저승에 가는 사람도 노자나 용돈이 필요하다고 믿어, 그 경우에는 종이돈을 마련하여 불에 태워 저승에 보낸다.

≪삼국유사≫에서 월명사(月明師)가 죽은 누이를 제사지내면서 <제망매가 祭亡妹歌>를 지어 부르니 문득 광풍이 불어 종이돈을 서쪽으로 날아가게 하였다고 한다. 서쪽은 죽은 누이가 가는 곳인 서방정토를 뜻한다. 돈을 저승에 보내는 무속의례가 일찍부터 불교와 관련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오늘날까지 재수를 소중하게 여긴다. 그래서 재수에 관한 속신을 지킨다. 아침에 장사를 시작할 때 첫 손님이 물건을 사는 것을 마수라고 하고, 마수를 잘 해야 하루 동안 재수가 좋다고 한다.

첫 손님이 흥정을 하다가 만다든가 에누리를 하면 마수를 잘못한 것으로 여겨 불쾌하게 생각한다. 마수를 하여 받은 돈에는 침을 뱉는다. 돈이 더럽다고 하면서도 돈이 많이 벌리도록 기원하는 동작이다.

택시 운전사는 첫 손님이 남자라야 그날 재수가 좋다고 한다. 여자는 재수가 없고, 임산부는 더욱 못마땅하다고 여긴다. 이 밖에 사는 집이나 가게, 취급하는 물건 등에도 재수가 있다면서 길흉을 따지는 습속도 있다.

가난한 사람이 한꺼번에 돈을 많이 가지려면 뜻밖의 행운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그런 조건에 맞는 도깨비방망이 이야기를 지어냈다.

가난하지만 마음씨 착한 사람이 어디 궁벽한 곳에 갔다가 도깨비들이 가지고 노는 방망이를 얻었다. 그 방망이에서 돈이고 밥이고 옷이고 나오라는 것이 다 나와 큰 부자가 되었다.

자기도 그렇게 되고 싶은 형제 또는 이웃 사람이 도깨비를 만나러 갔다가 방망이를 얻지 못하고 봉변을 당하기만 하였다. 이렇게 해서 도깨비방망이를 얻는 행운이 선행에 대한 보상이므로 아무나 본뜰 수 없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재물은 형제의 의를 해친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다. 고려 공민왕 때 어떤 백성 형제가 함께 가다가 아우가 황금 두 덩이를 주워 하나는 형에게 주었다. 배를 타고 나루를 건너는데, 아우가 갑자기 금덩이를 물에다 던졌다. 형이 이상하게 여겨 물으니 대답하기를, 금을 나누어 가지니 형을 시기하는 마음이 생겨 금이 상서롭지 못한 것인 줄 알고 물에다 던졌다고 하였다. 그 말이 맞다면서 형도 자기가 가진 금을 물에 던졌다고 한다.

재물을 지나치게 아끼는 구두쇠가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은 인간성을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굴비를 사다가 천장에 매달아 놓고 한 번씩 쳐다보고 반찬을 삼으면서 자식이 두 번 쳐다보니 그렇게 헤퍼서 되느냐고 나무랐다고 한다. 자린고비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구두쇠 이야기가 흔히 그렇게 시작된다.

며느리도 그 수법을 배워 고기 장수가 오자 고기를 만지기만 하고 사지는 않으며, 그 손을 씻어 국을 끓이니 자린고비가 그렇게 헤퍼서 쓰겠느냐 하면서 그 손을 동네 우물에다 씻으면 온 동네 사람이 일 년 내내 고깃국을 먹을 것인데 하며 혀를 차더라는 것이다.

돈 한 푼 없이 아무나 만나는 사람을 속이고 어르고 해서 숙식을 해결하고 다니는 김선달 등의 건달은 피해를 끼치기는 해도 재물에 대한 집착을 깨기 때문에 도리어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김선달이 대동강을 팔아먹은 것은 사기행각이지만, 대동강을 사면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허욕에 사로잡힌 상대방에 잘못이 있기 때문에 조금도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김선달과 비슷한 인물인 경주의 정만서가 불효자 대신에 잡혀가 한 밑천 잡았다는 이야기는 단순하지 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고을 원님이 돈을 우려내려고 애매한 사람에게 불효죄를 씌워 잡아오라고 하는데, 정만서가 돈을 받아 분부를 거행하는 사령과 나누고 대신 잡혀갔다.

원님이 호령을 하자, 자식을 알아보지 못하는 모친에게 효도를 할 도리가 없다고 하였다. 모친을 데려다 확인해 보니 층계 아래에 꿇린 인물이 자기 자식이 아니라고 잡아떼더라는 것이다.

1097년(숙종 2)에 의천(義天)은 엽전을 만들어 쓰자고 왕에게 건의한 ≪화폐론≫을 지으면서 엽전의 생김새를 들어 긍정론의 근거로 삼았다.

엽전이 밖은 둥글고 안은 모난 것을 일컬어, 둥근 것은 하늘을 본뜨고 모난 것은 땅을 본떴다고 하고, 만물을 하늘이 덮고 땅이 실어 없어지지 않게 하는 이치를 구현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런 생김새를 한 돈은 어디든지 흘러다니고 상하 백성에게 두루 퍼져 날마다 써도 무뎌지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때의 건의를 받아들여 국내 최초의 엽전인 해동통보(海東通寶)가 만들어졌다.

고려 무신란 직후인 12세기 말에, 임춘(林椿)이 지은 가전체 작품으로 <공방전 孔方傳>이 있다. ‘공’은 둥글다는 뜻이고, ‘방’은 모나다는 뜻이다. 엽전 형태의 돈을 그렇게 일컬으면서 마치 사람인 것처럼 의인화하여 전(傳)을 짓고, 그 내력·행적 등을 흥미롭게 서술하였다.

공방은 겉으로는 둥그나 속이 모난 사람이라고 하였다. 엽전의 모습을 의천의 글에서와는 다르게 풀이하여 돈의 폐해를 논하는 서두로 삼았다.

공방이 벼슬을 하자 권세를 잡고 뇌물을 거두어들였다고 한다. 농사의 근본을 알지 못하고 장사치의 이익만 앞세워 나라를 좀먹고 백성에게 해를 끼쳤다고 나무랐다.

그러다가 벼슬자리에서 쫓겨났으면서도 뉘우치는 기색은 없이 도리어 자기가 나라의 재정을 풍족하게 한 공적이 있다고 자랑하니 그럴 수 있겠는가 하고 개탄하였다. 그래서 자손마저 세상에서 욕을 먹고, 죄를 지어 처형되기도 하였다고 덧붙였다.

돈으로 장사를 하는 데에만 힘쓰고 농업은 소홀히 하면, 나라를 위태롭게 하고 백성을 해롭게 한다는 생각을 그렇게 나타냈다. 공방은 말하기를, “사람을 접하고 인물을 대함에도 어질고 어질지 않음을 묻지 않고, 비록 시정의 사람이라도 재물만 많으면 함께 사귀고 통하니 이른바 시정의 사귐이라는 것이다.”라고 하여, 돈으로 이익을 추구하느라고 유교의 가치관이 무너지는 것을 지적하였다.

돈을 노래한 다음과 같은 사설시조에서도 엽전의 생김새를 그렸다. “○○常 평ᄒᆞᆯ平 통ᄒᆞᆯ通 보뷔寶字/구멍은 네모지고 四面이 둥그러셔/○ᄃᆡ글 구으러 간곳마ᄃᆞ 반기ᄂᆞᆫ고나/엇더타 죠그만 金죠각을 두챵이 닷토거니 나ᄂᆞᆫ 아니 죠홰라.”

서두에서는 상평통보라는 엽전 이름을 풀이하였다. 떳떳이 평등하게 널리 통용된다는 뜻으로 상평통보라고 한 엽전이 실제로 어떤가 살폈다. 생긴 모양을 보면 구멍은 네모지고 사면은 둥글다고 하였다.

둥글기 때문에 어디로든지 굴러다닌다고 하였다. 구멍은 네모지다는 데 대한 풀이는 없으나 어디로든지 굴러다닌다고 해서 누구나 차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지 않은 가운데 깨우친다.

굴러가는 곳마다 반기지만 누구나 차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조그마한 쇠붙이를 두고 머리가 터져 상처가 나도록 다툰다고 하였다. 돈을 벌기 위하여 악착스럽게 경쟁하는 세태를 풍자한 말이다.

이 노래가 이루어졌을 시기인 18세기쯤에는 화폐경제가 발달하고 이익을 추구하는 경쟁이 심해졌다. 그런데 노래를 지은 사람 자기는 돈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릇된 세태에 대한 반감을 나타냈거나 아니면 속셈과는 다르게 슬쩍 눙쳐본 것이다. 이 노래에서는 돈은 어디로든지 돌고 누구나 반기므로 치열한 경쟁이 일어난다는 것을 아주 흥미롭게 나타냈다.

<우부가 愚夫歌>라는 가사는 돈의 폐해를 그리는 데 역점을 두었다. 남촌 한량 개똥이라는 위인이 어리석은 짓을 한다고 갖가지로 험담을 하면서, 허욕으로 장사하다가 남의 빚이 태산이라고 하고, 날 데 없는 돈을 물쓰듯 하여 위태롭게 되었다고 하다가 ‘입구멍이 졔일이라 돈 날 노릇 ᄒᆞ야보셰/젼답 파라 변돈 쥬기 종을 파라 월슈 쥬기/구목 버혀 장ᄉᆞ허기 셔ᄎᆡᆨ 파라 빗 쥬기’를 시작하였다고 한다.

전답·종·구목·서책은 양반이기에 물려받은 세전지물(世傳之物)이다. 그 중에서 구목은 조상 산소가에 서 있는 나무이다. 그런 것까지 팔아 변돈·월수·빚 등으로 지칭한 고리대금을 시작하였으니 용서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치산가 治産歌>라는 이름으로 전하는 몇 가지 가사는 돈을 모으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라고 하고, 그 방법을 일러주었다. 근검절약해서 지출을 줄이고 농사를 짓되 자가 소비가 아닌 상품생산에 힘을 쓰라고 하였다.

서울의 풍물을 노래한 가사 <한양가 漢陽歌>에서는 많은 물건을 모아 놓고 장사를 크게 하는 광경을 신이 나고 흥겹게 그려 화폐경제를 긍정하는 생각을 나타냈다.

화폐문제를 다룬 논설을 보더라도 폐해를 지적한 것이 더 많다. 이익(李瀷)은 ≪성호사설≫의 여러 대목에서 화폐 유통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였다. 장날이면 시골 사람들이 돈 꿰미를 차고 나가 술에 취하여 서로 붙들고 돌아오는데, 돈이 없으면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상인이 곡식 값을 조작해서 이익을 독점하기 때문에 농민이 피해를 입는다고 하였다. 그래서 당시에 유통되던 상평통보를 회수하고 엽전 사용을 정지시켜야 질서가 회복된다고 하였다.

그런데 우정규(禹禎圭)는 ≪경제야언 經濟野言≫에서 돈은 막힌 재화가 유통되고 쌓인 재화가 흩어지게 하며, 국내의 물가가 균등하게 되도록 조절하는 구실을 한다고 하였다.

돈이 있기 때문에 가격이 형성되어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이루어지고, 무겁고 부피가 큰 물건을 돈으로 바꾸어 운반할 수 있으니 일상생활에서 돈처럼 편리한 것이 없다고 하였다.

소설은 돈에 관한 문제를 다루는 데 특별한 의의가 있다. 소설이라는 문학 장르 자체가 돈에 관한 시비를 관심사로 해서 성장하고, 상품화되어 팔려 널리 읽혔다.

한편으로는 돈에 관한 설화를 받아들이고, 또 한편으로는 돈에 대한 긍정과 부정의 논의를 이어서, 소설의 내용이 단순하지 않다. 오늘날에 와서는 소설이 돈벌이 수단이 되기도 하고, 상업주의 문학으로서 문제와 폐단을 지녔다고 지적되기도 한다.

한문으로 기록된 야담 가운데 소설에 근접한 작품은 돈문제를 즐겨 다루었다. <삼난 三難>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작품에서는 몰락한 양반집 둘째 아들이 갓 혼인한 처와 남모르게 도시로 나가 술장사를 하고, 오랜만에 찾아온 형에게 밥값을 받을 정도로 절약하며 돈을 모아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비부 婢夫>라고 하는 것에는 재상가 비부가 된 인물이 처가 지닌 자금으로 장사를 하여 크게 성공한 과정이 소개되어 있다. 충청도 어느 고을에 가서 대추를 매점하고, 황해도에 가서 면화를 사들이는 등의 방식을 써서 돈을 남기고, 서울에서 헌 옷가지를 모아다가 함경도에 가서 인삼과 짐승가죽으로 바꾸기도 하였다.

번 돈을 굶주린 동포에게 다 나누어 주고 빈 손이 되었다가, 함경도 산속에서 산삼 무더기를 발견하여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박지원(朴趾源)의 한문소설은 이와 비슷한 야담을 날카로운 문제의식으로 다듬었다고 할 수 있으며, 돈문제를 취급하는 데 특별한 관심을 두었다.

<양반전 兩班傳>에서는 가난한 양반이 나라 곡식을 꾸어 먹고 갚을 수 없게 되자 아내가 “양반이란 한 푼 어치도 안 된다.”고 빈정댔다. 이웃의 부자가 곡식을 대신 갚고 양반을 사려고 하다가 양반 노릇을 하려면 부당한 횡포를 저질러야 한다는 것을 알고 그만두었다고 한다.

그런데 <허생전 許生傳>의 주인공 허생은 독서만 일삼는 선비 노릇을 하다가 아내가 보채는 것을 참지 못하고 집을 나선다. 장안의 갑부 변씨에게 1만 냥을 꾸어 전국 각처로 다니며 물자를 매점하는 방식으로 장사를 하고 외국 무역까지 해서 거금을 모았다.

너무 많은 돈은 바다에 빠뜨리고 변씨에게 줄 십만 냥만 가지고 가서 갚았다. 변씨가 안색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자 만 냥을 잃지 않았는가 하고 염려하니 “만 냥이 어찌 도(道)를 살찌게 하리오.”라고 대답하였다.

돈을 버는 방법을 제시하면서 그래서 생기는 폐해도 지적하였다. 물자를 매점하는 수단은 뒤의 사람이 다시 쓰면 나라를 병들게 하리라고 하였다.

<흥부전>은 돈문제를 중요시한 국문 고전소설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놀부와 흥부는 형제이지만 돈이 있고 없는 차이 때문에 처지가 아주 달라졌다. 가난한 흥부는 품팔이를 닥치는 대로 하다가 매 품팔이까지 하였다.

화폐경제시대에 빈민이 겪는 고난을 아주 선명하게 나타낸 것이다. 그런데 다른 해결책은 없고, 도깨비방망이와 같은 구실을 하는 기적의 박씨 덕분에 흥부는 한 순간에 부자가 되었다.

놀부는 부자이고 구두쇠이다. 제사를 지내면서 제물을 차리지 않고 대전(代錢)으로 돈만 놓고, 상을 물리고 황초값 닷 푼은 거둘 길이 없다고 하는 위인이다. 갖가지로 열거한 심술은 모두 남의 손해가 곧 자기의 이익이라고 여기는 사고방식을 나타낸다. 흥부와 놀부가 사는 곳은 시골로 소개되었지만 고리대금이 성행하였다.

흥부가 매 품팔이 선금을 받아오자 아내는 “돈 말이 웬 말이오? 일수 돈을 얻어 왔소? 월수 파수변을 얻어 왔소? 오 푼 달변을 얻어 왔소?” 하면서 고리대방식을 셋이나 열거하였다. 흥부는 그래서 피해를 입기만 하고, 놀부는 돈을 놓고 돈을 먹는 원리를 잘 터득하고 실행하였다.

투자해도 이익이 나지 않으니 흥부는 도와 주지 않지만, 소는 먹이고 머슴은 부리고 일꾼도 샀다. 박을 탈 때도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자작으로 농사를 크게 짓고 고리대도 하여 돈을 모으고, 돈이 모든 가치의 척도라고 깊이 깨달은 위인이다.

현대소설에서는 돈에 관한 부정론과 긍정론이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고 나타나 사회구조와 변화를 깊이 있게 그리는 구실을 하였다. 염상섭(廉想涉)의 장편소설 <삼대 三代>에서는 부자 가문의 3세대를 대조적으로 그려 돈의 의미가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밝히고 있다.

할아버지는 돈을 모아 양반을 사고 족보를 꾸미는 데 열중하면서도 낭비는 억제하였다. 그런데 주인공의 아버지는 미국 유학을 하고 와서 기독교 교회사업을 한다면서 뒤로는 방탕한 생활을 하며 재산을 탕진하려 하였다. 주인공은 할아버지에게도 아버지에게도 불만을 가지고 있었지만, 돈을 물려받아 무엇을 해야 할지 계획이 없다.

<삼대>의 속편 <무화과 無花果>에서는 같은 성격의 주인공이 나서서 기업을 경영하고 신문사를 운영하지만 능력이 부족하고 장애를 극복하지 못하여 파멸한다.

사회주의운동에 적극 동조하지 않으면서 측면 지원을 하려는 것도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시대의 민족 자본이 많은 기대를 모으면서도 사실은 무기력하다는 것을 그런 방식으로 나타냈다.

채만식(蔡萬植)은 <태평천하 太平天下>에서 대를 물려 온 악덕 지주 겸 고리대금업자를 통렬하게 풍자하고, 그 보수적인 성향이 일제의 식민지 통치와 밀착되지 않을 수 없는 내막을 폭로하였다. 그러면서 그 위인에게 극단적인 구두쇠의 성격을 뚜렷하게 지니게 해서 웃음을 자아냈다.

또한 <탁류 濁流>에서는 일제의 자본 침투가 투기를 부추겨 허욕 때문에 파멸이 가중되는 세태를 통해 돈의 폐해를 극명하게 그리고, 그로 인해서 거듭 희생되는 여인의 기구한 생애를 다루었다. →화폐

참고문헌

『조선민족설화의 연구』(손진태, 을유문화사, 1947)
『속담사전』(이기문, 민중서관, 1964)
『이조한문단편집』(이우성·임형택 역편, 일조각, 1973∼1978)
『한국경제사상사』(김병하, 일조각, 1977)
『한국문학통사』 1∼5(조동일, 지식산업사, 1982∼1988)
「한국문학과 돈」(황패강 외, 『문학과 비평』 1987년 겨울호 특집, 탑출판사,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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