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서울특별시 중구 예장동에 있는 연극 전용극장.
개설
원형무대와 양편에 사이드스테이지(side stage)가 있고, 소극장 전체가 무대로 구성되어 있는 점이 특징이다. 객석 뒤의 원형무대는 그리스 야외극장의 무대를 본뜬 것인데, 성당의 성가대 무대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전면에는 중세기의 동시무대 형식을 본떠서 만든 관객석 가운데까지 돌출한 무대가 있으며, 주무대는 근대극의 무대형식이다.
극장의 또다른 특색은 연기자들이 객석 밑에서 드나들게 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배우가 관객 속에서 솟아나오고 관객들이 연극에 완전히 몰입한 가운데 연극이 진행될 것을 의도한 연극적 필요성에 따라 고안된 것이다.
연원 및 변천
그러나 연극운동의 핵심이라 할 공연활동은 재정적 기반의 취약성과 연기진의 대거 이탈로 1963년 1월 막을 내렸다. 그 동안 공연작품 6편, 총공연횟수 232회, 동원관객수 7만여 명을 기록하고 자체 공연을 중단하고 말았다. 그 뒤 대관극장으로 바뀌어 완전한 흥행장으로 변질되었는데, 높은 대관료 책정으로 비난을 면치 못하였다. 이후 1964년 9월에는 연극아카데미에서 양성된 인재들을 중심으로 전속극단 ‘드라마센터’를 출범시켰다.
극단 드라마센터의 창단으로 신진작가 발굴과 양성에 힘을 기울였고, 1965년부터 신춘문예 당선작을 공연하여 창작극 진흥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들이 본격적인 현대극운동의 진원지가 된 것은 1969년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즉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유덕형(柳德馨)의 연출로 공연된 유치진 작「나도 인간이 되련다」가 기점이 되었는데, 이 공연은 동작 중심의 연출로 대사 위주의 리얼리즘 연극 연출법을 벗어난 반사실주의 연극이었다. 이것은 윤대성(尹大星) 작「망나니」, 오태석(吳泰錫) 작「쇠뚝이놀이」에서 볼 수 있는 전통극과 서구 현대극의 충돌과 융합으로 나타났다. 극단에 안민수(安民洙)가 가담하면서 이 같은 반사실주의 연극운동은 이후 한국연극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때부터 드라마센터는 레퍼토리 시스템을 시도하였다. 전용극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레퍼토리 시스템은 한국연극의 발전을 위해서 필수적인 것이었다. 1973년 초연한 오태석 작·유덕형 연출「초분」, 안민수 연출「태」·「하멸태자(太子)」등은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등지에서도 인정받아 초청 공연되었다. 극단 드라마센터는 1974년 2월 유치진의 작고 후, 극단 이름을 ‘동랑(東朗)레퍼토리’로 바꾸고 레퍼토리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가동하였고, 이로써 드라마센터는 현대연극의 실험적 공간으로 이미지를 구축하였다.
기능과 역할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한국 근·현대 연극 100년사』(한국 근·현대 연극100년사 편찬위원회, 집문당, 2009)
- 『한국 근대극장 변천사』(유민영, 태학사, 1998)
- 『한국극장사』(유민영, 한길사, 1982)
- 『서울예술전문대 20년사』(유민영, 예장 2, 1982)
- 「1970년대 드라마센터의 연출 특성 연구」(김숙현, 동국대학교 박사논문, 2005)
- 「동랑 레퍼터리 극단 연구」(한은주, 동국대학교 석사논문,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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