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슬링 (wrest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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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게임 / 레슬링(그레코로망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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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
개념
주어진 시간에 2명의 경기자가 상대방의 양쪽 어깨를 동시에 매트에 닿게 하거나 여러 경기기술을 통해 승패를 가리는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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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주어진 시간에 2명의 경기자가 상대방의 양쪽 어깨를 동시에 매트에 닿게 하거나 여러 경기기술을 통해 승패를 가리는 경기.
내용

힘과 투지를 필요로 하는 운동으로서, 신체를 조화있게 발달시키고 지구력·근력·유연성·교치성을 길러주며, 인내력·투지력·용감성 등의 형성에 도움을 준다. 시합의 종류에는 차고 꺽고 치는 것을 제외한 몸전체를 이용하는 자유형과 상대편 상반신만을 대상으로 공격과 방어를 할 수 있는 그레고·로만형이 있다.

1975년에는 삼보레슬링(레슬링복장에 유도복 상의를 입고 하는 경기) 세계선수권대회도 개최한 적도 있지만 현재는 삼보레슬링경기대회는 실시하지 않고 있으며 여자부 레슬링을 실시하고 있다. 경기시간은 자유형, 그레고·로만형 모두 17세 이상(시니어, 주니어)은 5분간의 시합을 하여 승패가 안 가려질 경우에는 3분간의 연장전을 하고, 13세에서 16세까지는 4분간의 시합을 하여 승패가 안 가려질 경우에는 2분간의 연장전을 실시한다.

여자부는 17세 이상(시니어, 쥬니어)은 4분간의 시합을 하여 승패가 안 가려질 경우에는 2분간의 연장전을 하며, 13세에서 16세까지는 3분간의 시합을 하여 승패가 안 가려질 경우에는 2분간의 연장전을 하고 중간에 휴식 없이 경기를 진행한다.

경기장의 매트는 직경 9m의 원형으로서 부드러운 스펀지 위에 한 장의 비닐 캔버스가 덮혀 있다. 원형 내에는 1m 너비의 붉은 색 원으로 수동지역(Passivity Zone)을 표시하고, 중앙에는 직경 1m의 원이 10㎝ 너비로 그려져 있다. 체급은 체중의 한계를 뜻하며 연령에 따라 나뉘는데, 일반부는 20세 이상, 주니어부는 17∼19세, 소년부는 13∼14세 및 15∼16세로 나누어 경기를 하게 된다.

경기복장은 원피스 저지로 만들어져 양어깨에 견대(멜빵)로 연결된 팬츠를 입는다. 신발은 나일론이나 부드러운 가죽으로 된 것을 신으며, 신체의 일부에 지정된 것 이외의 부착은 금지되어 있다. 득점에는 1점, 2점, 3점, 5점, 폴(fall)로 되어 있으며 시합의 결과는 각 선수에게 배정된 등급점수에 의하여 결정된다.

예를 들어, 폴승을 하였을 때는 승자 4점, 폴패자 0점이 되며, 시합결과 기술점수 차가 10점 차이로 끝났을 때에는 승자 4점, 패자가 기술득점이 있을 경우 1점, 없을 경우 0점이 된다. 경기기술은 잡기, 응수, 반격의 총체로서 무너뜨리기, 던지기의 스탠딩기술과 굴리기, 뒤집기, 넘기기의 그라운드기술이 있다.

레슬링경기가 처음으로 기록된 것은 1938년 바그다드(Bagdad) 근교의 사원에서 발견된 그림에 나타난 것으로서, 약 5000여 년 전 메소포타미아(Mesopatamia)지방에 살던 수메리아(Sumeria)인들 사이에 레슬링이 하나의 투기로서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나일(Nile)강 근처에서 발견괸 베니 핫산(Beni Hasan)사원의 벽화는 고대 레슬링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훌륭한 작품으로 약 4000년 전의 이집트와 아시리아의 약 300여 가지의 레슬링기술이 그려져 있는데, 그 중 몇몇 기술은 지금도 이용되고 있다.

기원전 704년에 열렸던 제18회 고대올림픽부터 레슬링은 스포츠종목으로 채택되었다. 기원전 393년에 고대 올림픽이 중지되었으나 그리스에서 행하였던 레슬링과 로마에서 행하였던 레슬링을 합한 그레고·로만형 레슬링이 생겨 1896년 근대 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1904년 제3회 올림픽대회부터는 자유형을 7체급(47.6㎏, 52.1㎏, 56.7㎏, 61.2㎏, 65.7㎏, 71.6㎏, +71.6㎏)으로 나누고, 1908년에는 그레고·로만형은 4체급(66.6㎏, 73㎏, 92.9㎏, +92.9㎏)으로 나누어 실시하였다.

우리 나라는 근대에 들어와서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1934년 중앙기독교청년회관 YMCA에서 김후옥·유옥길·조순동 등이 레슬링부를 창설한 뒤 1941년에는 YMCA주최로 제1회 레슬링선수권대회를 개최하여 국내에서 처음으로 레슬링경기를 선보였다. 1942년 4월에는 서울공설운동장에서 국내 선발팀과 일본 유학생팀과 친선경기가 개최되어 국내 레슬링 보급에 박차를 가하였다.

1945년 10월에는 한국체육관이 창립되었으며, 1946년 3월에는 조선아마튜어레슬링협회가 창설되어 그 해 11월에 전국레슬링선수권대회가 열리게 되었다. 광복 후 1948년 7월에는 조선아마튜어레슬링협회를 대한아마튜어레슬링연맹으로 개칭하고 국제레슬링연맹(FILA)에 가입하였다.

그 해 제14회 런던올림픽대회 때 처음으로 국내선수 2명이 참가하여 5위에 황병관(黃炳寬), 6위에 김석영(金石永)에 입상하는 성적을 보였고, 제16회 멜버른올림픽대회에서는 3명이 출전하여 4위에 이상균(李相均)이 입상하기도 하였다. 1964년 제19회 동경올림픽대회에서는 처음으로 자유형과 그레고·로만형의 두 종목에 출전하여, 자유형 플라이급(52㎏)에서 장창선(張昌宣)이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장창선은 이후에도 1966년 터론토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플라이급 우승을 하는 영광을 차지하기도 하였다. 1976년 제21회 몬트리올올림픽대회는 우리 나라 레슬링계 뿐 아니라 한국 스포츠계에 감격스러운 대회였는데, 이 대회에서 자유형 페더급(62㎏)의 양정모(梁正模)가 금메달을 획득하고 자유형 플라이급(52㎏)에서 전해섭(全海燮)이 동메달을 획득하는 등 쾌거를 올리게 되었다.

1984년 7월 29일부터 8월12일까지 개최된 제23회 로스앤젤레스올림픽대회에서도 우리 나라의 레슬링은 위용을 떨쳤는데, 그레고·로만형에서 김원기(金原基)가 62㎏급에서 금메달, 자유형에서 유인탁(柳寅卓)이 68㎏급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것을 비롯하여 은메달 1개, 동메달 4개의 성적을 거두었다.

1986년에 개최된 제10회 서울아시아경기대회에서도 금메달 9, 은메달2, 동메달 5개의 성적을 거두었으며, 1988년 서울올림픽대회에서도 그레고·로만형 74㎏급에서 김영남(金永南)과 자유형 82㎏급에서 한명우(韓明愚)가 금메달을 차지하고 그 밖에 은메달 2개, 동메달 5개 기록하는 등 우리 나라의 레슬링이 국제적 우위를 보여주고 있다.

매년 정기적으로 열리는 국내 주요 경기대회로는 전국 체육대회를 비롯하여 회장배·KBS배·대통령배 대회가 있어 우수선수를 선발하고 신인선수를 발굴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 밖에도 세계대회에 파견할 선수를 각 대회 때마다 수시로 선발전을 개최하여 선수들이 기술연마에 총력을 기울이도록 하고 있다.

고대 올림픽에서부터 근대 올림픽에 이르기까지 레슬링은 모든 민족들에게 널리 알려져 왔으며, 신체의 단련과 강화를 위한 주요한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다. 오늘날에 있어서도 레슬링은 세계에서 널리 유행하는 운동의 하나로 각광을 받고 있는데, 그 이유는 힘과 투지, 기술이 혼합된 1:1의 남성적인 경기라는 점 때문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로스앤젤레스올림픽대회, 서울아시아경기대회, 서울올림픽대회에서의 쾌거로 인하여 국민의 관심이 한층 높아졌다.

1998년 6월 말 현재 대한 레슬링 협회에 등록선수는 1,890여 명(중학교 84개교 734명, 고등학교 53개 학교 693명, 대학교 21개 학교 266명, 일반 31팀 198명)이 등록되어있다.

참고문헌

『레슬링』(문교부·서울신문사, 1965)
『투기』(김창규 외, 문교부, 1975)
『레슬링』(정동구, 형설출판사, 1981)
『레슬링』(김창규, 동양문화사, 1982)
『레슬링』(대한체육회 스포츠과학연구소, 홍익문화사, 1983)
『영광으로의 레슬링』(국군체육부대, 육군인쇄공장, 1986)
『스포츠연감』(일간스포츠사,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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