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만취유고』는 조선 말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학자 성경수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42년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1942년에 13권 4책의 목활자본으로 간행되었다. 격변기를 맞은 전통적 지식인의 사유와 감정, 학문관, 문학적 지향을 볼 수 있다. 또한 간재 전우 등으로 대표되는 근현대 전환기 유학자들의 교류 양상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정의
조선 말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학자 성경수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42년에 간행한 시문집.
저자 및 편자
『만취유고』의 편자인 성하정(成夏鼎, 1894~미상)은 성경수의 아들이다. 이력은 미상이다. 다른 편집자인 정대수(丁大秀, 1882~1959)는 고창의 유학자로, 본관은 영광(靈光), 자는 사중(士中), 호는 양천(陽泉)이다. 1906년(고종 43) 초시(初試)에 합격했으나 벼슬을 단념하고, 1910년에 간재(艮齋) 전우(田愚, 1841~1922)의 제자가 되었다.
편찬 및 간행 경위
구성과 내용
권두에 정기(鄭琦, 1879~1950)와 정대수의 서문이 있다.
권1∼3에는 부(賦) 3편, 조(操) 1편, 시 259수가 수록되어 있다. 시문(詩文)은 담담하면서 꾸밈이 없고, 순실(純實)하면서 기교 부림이 없어서, 저자의 함축된 덕(德)이 깊고 사람됨이 단아함을 말해준다. 권1에는 성경수의 조상, 옛 선현의 운(韻)에 차운(次韻)한 것, 지인들과 화창(和唱)한 것, 옛 선현의 사적을 읽고 느낀 바를 적은 것이 많지만, 정경을 읊은 것은 적다. 이는 저자가 시작(詩作)을 인격 수양의 한 수단으로 생각했음을 나타낸다. 권1의 마지막 작품인 「문국변유감(聞國變有感)」 이후로는 차운시의 비중은 감소하고, 성경수의 감회나 국권 상실과 식민지화로부터 촉발된 슬픔을 표현한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권4∼6에는 서(書) 110편이 수록되어 있다. 서(書)는 시사(時事)에 대한 내용은 거의 보이지 않고, 전통적 선비들의 처세·진퇴·학문의 방법 등에 관한 것이 많다. 성경수의 폭넓은 교유 관계를 보여주는데, 이력을 파악하기 어려운 수신인이 많다. 권6에는 친족들에게 보내는 서찰들이 수록되었다.
권7에는 잡저 11편, 서(序) 3편, 기(記) 11편, 발(跋) 4편이 수록되어 있다. 잡저 가운데 「명륜설(明倫說)」은 인간의 대륜(大倫)이 하늘이 내려준 것이며, 그것은 군(君)·사(師)에 의해서만 밝혀진다는 글이다. 「서시제생(書示諸生)」은 학문이 인간의 몸과 마음을 바르게 닦게 하여 치세(治世)에 이르게 하고, 타고난 기질을 변화시켜 성현을 바라게 만든다는 내용이다. 「서학설(棲鶴說)」은 인(人)이나 물(物)이 다 머무르는 데가 있지만 거기에는 거처하기 위한 머무름과 의리의 머무름이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밖에 은자(隱者)를 변설하는 「채국설(采菊說)」, 전통적으로 내려온 명당(明堂)을 없앤 제(齊)나라의 선왕(宣王)을 변척한 논, 일개 신하로 자기 나라를 위해 목숨도 돌보지 않았던 인상여(藺相如)에 대한 예찬론, 상앙(商鞅)이 나무를 옮긴 데 대해 상(賞)을 내린 것은 거짓이라 힐난하는 내용의 글 등은 당시 사회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해 자신의 뜻을 암시한 것이다.
권8에 명(銘) 2편, 잠(箴), 찬(贊), 혼서(昏書) 1편, 상량문 3편, 제문 5편, 묘갈명 5편, 묘표 1편, 행장 3편 등이 실려 있다.
권8의 말미에 유영선(柳永善, 1893~1960)의 발문(跋文)이 있다. 유영선은 전우의 제자이다.
권9∼13은 부록으로, 성경수에 대한 각지 유학자들의 만사 90편, 제문 23편, 영정이안고유문(影幀移安告由文)·영정봉정고유문·묘갈명·묘지명·가장·행장·전(傳)·서 각 1편, 기 2편, 찬 1편, 문(文) 3편, 영정을 봉안할 때 사림(士林)의 운(韻) 35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묘갈명은 김영한(金甯漢, 1878~1950)이, 묘지명은 서상춘(徐相春, 1861~미상)이 각각 지었다. 두 사람은 김창협(金昌協, 1651~1708)의 문집 『농암집(農巖集)』의 별집(別集) 편찬에도 관여한 바 있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成卿修, 『晩翠遺稿』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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