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에 신라의 지명으로, 나당전쟁 당시 주요 격전지 가운데 한 곳이다. '매초성'이라고도 한다. 『신당서』와 『삼국사기』에 신라와 당나라의 전투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두 사서의 서술에 차이가 있는데, 『삼국사기』가 보다 자세하며 사료적 가치가 높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675년(문무왕 15) 9월 29일에 당나라의 이근행(李謹行)이 20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매소성에 주둔하였는데, 신라군이 공격하여 승리하였다고 한다. 신라는 3만 380필의 말을 얻었고, 이와 비슷한 수의 병기를 노획하였다고 하였다.
매소성전투의 승리로 신라는 당나라 육군에 큰 타격을 가하였고, 마침내 나당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고 평가된다.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전에서는 675년(문무왕 15)에 김원술(金元述)이 매소천성(買蘇川城) 전투에 참전하여 전공을 세웠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매소성과 밀접한 지명으로 파악된다. 대체로 지금의 경기도 북부에 있었을 것으로 보는데, 구체적인 위치는 이견이 있다. 연천 대전리산성(大田里山城)으로 보는 견해가 있고, 양주 대모산성(大母山城)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