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궁

  • 역사
  • 물품
  • 삼국
3세기 무렵 소수맥의 거주지에서 생산되던 명궁의 하나.
물품
  • 용도
  • 제작 시기3세기 무렵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1년
  • 이정빈 (충북대 교수)
  • 최종수정 2022년 09월 11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맥궁(貊弓)은 3세기 무렵 소수맥의 거주지에서 생산되던 명궁의 하나이다. 소수맥은 소수에 거주하였는데, 지금의 압록강 하류 일대로 파악된다. 3세기 초반 위나라 조조의 세력이 부상하자 예와 맥이 좋은 활을 공물로 보냈다고 하는데, 이때 소수맥의 맥궁이 소개된 것으로 보인다.

정의

3세기 무렵 소수맥의 거주지에서 생산되던 명궁의 하나.

내용

맥궁은 3세기 무렵 소수맥(小水貊)의 거주지에서 생산되던 활의 일종으로 명궁(名弓)이었다. 『삼국지』 「동이전」을 비롯한 중국 측의 사서를 보면 고구려는 나라를 세우고 대수(大水)에 의지하여 거주하였고, 고구려의 별종(別種)이 소수(小水)에 의지하여 나라를 세웠는데, 그를 소수맥이라 부른다고 하였고 소수맥에서 맥궁이 생산된다고 하였다.

대수는 지금의 압록강 중류를 가리키며, 소수는 지금의 애하(靉河)와 포석하(浦石河)에서 압록강 하류 일대로 파악된다. 맥궁은 좋은 활이었으며, 소수맥 지역의 특산품으로 유명하였다. 3세기 초반 위나라 조조(曹操)의 세력이 부상하자 예(濊)와 맥(貊)이 좋은 활을 공물로 보냈다고 하는데, 이로부터 중국 측에 소수맥의 맥궁이 소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때 예의 낙랑단궁(樂浪檀弓)도 소개되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소수맥과 예 등은 낙랑을 통해 조조 세력과 교섭하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된다. 현재 맥궁의 실물은 남아 있지 않아 재료와 제작 방식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대체로 각궁(角弓)의 일종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참고문헌

  • 원전

  • - 『삼국지(三國志)』

  • - 『후한서(後漢書)』

  • 단행본

  • - 『고구려의 기원과 성립』(동북아역사재단 한국고중세사연구소, 2020)

  • - 여호규, 『고구려 초기 정치사 연구』(신서원, 2014)

  • - 노태돈, 『고구려사 연구』(사계절, 1999)

  • - 이병도, 『한국고대사연구』(박영사, 1976)

  • 논문

  • - 여호규, 「고구려 초기의 양맥과 소수맥」(『한국고대사연구』 25, 2002)

  • - 박찬규, 「소수맥과 양맥고」(『선사와 고대』 9, 1997)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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