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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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인물
삼국시대 고구려 보장왕 대 활동한 장수.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내용 요약

안고는 삼국시대 고구려 보장왕 대 활동한 장수이다. 654년 고구려와 말갈의 군대를 이끌고 거란을 공격하자, 거란은 이굴가가 기병을 동원해 방어하였는데, 양측은 신성(新城)에서 전투하였다. 안고의 군대는 신성에서 패배하였고, 거란의 추격을 받아 더욱 큰 피해를 입었다. 안고의 군대가 전투하였던 신성은 거란의 거주지였던 요하 중·하류 시라무렌 유역에 소재하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목차
정의
삼국시대 고구려 보장왕 대 활동한 장수.
주요 활동

안고(安固)는 삼국시대 고구려 보장왕 대 활동한 장수, 654년 10월 고구려와 말갈의 군대를 이끌고 거란을 공격하였다. 거란의 송막도독(松漠都督) 이굴가(李窟哥)가 기병을 동원해 안고를 방어하였다. 이굴가는 거란 여러 부락의 연맹장이었다. 양측은 신성(新城) 대풍(大豐)에서 전투하였다고 하는데, 마침 큰바람이 일어나 고구려 측에서 쏜 화살이 모두 되돌아왔으므로, 진영이 소란하였고 거란은 이 틈을 타서 공격해 500여 주1을 참수하고 700여 필의 말을 얻었다고 한다.

안고의 군대는 퇴각하였는데, 초목이 마른 데다 바람까지 불었다고 한다. 거란군은 불로 공격해 불에 타죽은 군사와 말이 매우 많았다고 한다. 안고 군대의 대패였다. 거란은 이 승전을 기념해 주2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종래 고구려와 거란이 싸웠다고 한 신성은 요령성(遼寧省) 무순(撫順)에 소재한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송막도독부가 지금의 내몽골 파림좌기(巴林左旗)에 소재하였고, 거란이 주로 요하 중 · 하류 및 주3 일대에 거주하였다는 점에서 그 일대에서 찾아야 한다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거란은 승전을 당에 알렸고 당 조정은 이를 널리 알렸다고 하였다. 654년 안고의 거란 공격은 당과 거란의 관계를 차단하고, 이굴가의 휘하에 있던 거란 여러 부락을 고구려 측에 복속시키기 위한 목적에서 추진되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참고문헌

원전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당서(新唐書)』
『자치통감(資治通鑑)』
『책부원귀(冊府元龜)』

단행본

이재성, 『고구려와 유민민족의 관계사 연구』(소나무, 2018)
노태돈, 『삼국통일전쟁사』(서울대학교출판부, 2009)

논문

나동욱, 「7세기 중반 高句麗의 東蒙古 進出과 軍事戰略」(『한국사연구』 114, 한국사연구회, 2009)
주석
주1

전쟁에서 죽인 적군의 머리를 세는 단위.    바로가기

주2

고구려 때에, 전사자의 유해를 한곳에 모아 장사 지내고, 전공(戰功)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합동 무덤.    우리말샘

주3

시라무렌은 시라무룬강 또는 시라무룬허, '누런 강'을 의미한다. Šira Mören(몽골어), 황하와 구별되는 황수(潢水)로도 불린다. 거란족 요나라의 중추지이기도 하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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