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권 26책(본집 46권 23책, 별집 4권 2책, 부록 1권 1책). 목활자본. 1732년(영조 8) 아들 행교(行敎)와 손자 동원(東源)에 의해 편집, 간행되었다.
본집의 권1은 사부(辭賦) 2편, 시 140여 수, 권2∼4는 시 460여수, 권5∼8은 소장(疏狀)·서계(書啓) 140여 편, 권9∼29는 서(書) 280편, 권30∼31은 잡저 35편, 권32는 명(銘) 5편, 서(序) 7편, 기(記) 3편, 발(跋) 31편, 권33은 축고문(祝告文) 8편, 서원축문(書院祝文) 10편, 제문 38편, 권34는 제문 47편, 권35는 묘표 27편, 권36은 묘표 1편, 묘지명 14편, 권37은 묘지명 18편, 묘갈명 2편, 권38·39는 묘갈명 27편, 권40은 묘갈명 16편, 신도비명 2편, 권41은 신도비명 6편, 권42는 신도비명 3편, 행장 1편, 권43∼46은 행장 23편이 수록되어 있다. 또 별집 권1∼4에는 서(書) 60편이 실려 있다.
시 중에는 이이(李珥)의 운(韻)을 차운한 금강산 유람의 시가 권2에 실려 있다. 이 문집에서 소장과 서계가 특히 많은 것은 저자가 한번도 조정에 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계는 사관(史官)에 의해 전달된 왕의 유시(諭示)나 비답(批答)에 대한 회신이 대부분이다. 서한은 문집의 태반을 차지하고 있다.
주로 박세채(朴世采)·나양좌(羅良佐)·박태보(朴泰輔) 등 당시 절친했던 인사들과 주고받은 서한이 많다. 잡저에는 학문에 관한 것과 예에 관한 글 4편이 실려 있다. 그 가운데 <초학획일지도 初學畫一之圖>는 주희(朱熹)의 백록동서원게시(白鹿洞書院揭示)와 이이의 ≪격몽요결 擊蒙要訣≫을 인용해 만들었다.
<위학지방도 爲學之方圖>는 지경(持敬)·강학(講學)·성찰(省察)로 주희·이황(李滉)·이이의 여러 설을 인용, 설명하였다. 발문 중에는 <일재집발 一齋集跋>·<시남선생문집발 市南先生文集跋>·<포저유서발 浦渚遺書跋>·<발수록 跋隨錄> 등 유명한 학자의 유고에 대한 발문이 있다.
그 중에도 유형원(柳馨遠)의 ≪반계수록 磻溪隨錄≫ 발문이 자료로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 별집의 4권 2책에는 이른바 회니문제(懷尼問題)로 주고받은 서한이 실려 있다.
즉, 송시열(宋時烈)에게 주려던 신유(辛酉) 이후의 의서(擬書), 그리고 그와 주고받은 왕복서한, 나양좌·박세채·박태보·조사위(趙士威) 등과 회니관계로 주고받은 서한, 이유태(李惟泰)의 예설에 관해 논변한 서한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 끝에는 그의 종손 동수(東洙)가 쓴 발문이 있다.
이 유고 외에 윤광소(尹光紹)가 편찬한 연보 2권 1책과 연보 부록 2권 1책 및 연보 후록(後錄) 2권 1책, 그리고 문인이 간행한 언행록 5권 1책과 유고 보유 1책이 있다고 전하는데, 현재 각종 목록류에는 언행록과 유고 보유는 보이지 않고, 연보 6권 3책은 본집과 별도로 나와 있다.
상소문이나 서계 중에는 당시의 정치사상 연구에 참고가 될 자료들이 많으며, 서한·묘지명·행장 등은 당시 인물 연구와 사회 동향 내지 당쟁·예송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규장각도서 등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