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모두루총은 중국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태왕향 하해방촌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굴식돌방무덤이다. 돌방봉토무덤으로 외형은 절두방추형이고, 내부 구조는 두방무덤으로서 앞방에 옆방이나 감실은 없다. 무덤 안에 묵서된 800여 자의 묘지와 기타 관련 자료를 분석하여 무덤의 주인은 광개토대왕의 신하인 모두루로 확인되었다. 묘지에는 모두루가의 흥성 과정과 고구려인의 독자적인 천하관을 비롯하여 고구려 관등명, 성민·곡민과 같은 지방제도 관련 내용 등이 풍부하게 담겨 있다. 또한 부여를 둘러싼 선비 모용부와에 대한 내용을 통해 4∼5세기 대외 관계를 밝히는 데에도 중요한 자료이다.
정의
중국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集安市) 태왕향 하해방촌(太王鄕 下解放村)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굴식돌방무덤. 봉토식석실분.
개설
내용
벽면에는 모두 백회를 발랐으나 벽화가 없는데, 회칠의 보존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보아 본래 벽화를 그리지 않았다고 여겨진다. 모두루총이 주목을 끄는 까닭은 앞방 안벽(동북) 모서리에서 시작하여 오른벽(서북벽) 북측에 걸쳐 묵서된 묘지(墓誌) 때문이다. 제수(題首) 2행과 매행 10자인 79행의 본문으로 이루어져 모두 800여 자에 이르지만, 현재 판독할 수 있는 글자는 3분의 1에 불과하다. 예서체(隸書體)로서 한나라의 간서법(簡書法)을 따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판독 가능한 글자가 적어서 묘지 내용에 대해서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1935년 처음 조사할 때에는 ‘대사자모두루□□노객(大使者牟頭婁□□奴客)’이라는 제수와 함께 본문에 자주 등장하는 모두루를 주인공으로 간주하여 모두루총으로 명명하였다. 그러나 중국학자 노간(勞幹)은 또 다른 등장 인물인 ‘염모’를 주인공, 모두루를 그의 노객 곧 가신으로 보아 ‘염모총(冉牟塚)’으로 개명하였다. 그렇지만 그 뒤 묘지와 관련자료를 자세히 검토한 결과, 모두루는 염모의 노객이 아니라 광개토왕(廣開土王)의 노객 곧 신하이며, 염모는 모두루의 조부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중국에서는 1980년대까지도 ‘염모묘’로 명명하다가 최근에 ‘모두루묘’로 수정하였다.
묘지에는 5세기 전반 고구려인의 독자적인 천하관을 비롯하여, 고구려 왕실의 출자, 대형(大兄) · 대사자(大使者) 등 관등명, 영북부여수사(領北夫餘守事)나 성민(城民) · 곡민(谷民) 과 같은 지방제도 관련 내용 등을 풍부하게 담고 있다. 또한 염모에서 모두루로 이어지는 모두루가의 흥성 과정을 통해 귀족 가문의 실태를 파악할 수 있었고, 이들과 국왕과의 관계를 통해 정치체제를 해명할 수 있는 실마리를 잡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북부여를 둘러싼 선비(鮮卑) 모용부(慕容部), 곧 전연(前燕)과의 상쟁(相爭)도 담고 있어서 4∼5세기 대외관계를 밝히는 데에도 중요한 시사를 준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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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개토왕릉비』(박시형, 1966)
- 「牟頭婁墓誌銘에 투영된 5세기 고구려의 정치세력」(최일례, 『韓國古代史硏究』 85, 2017)
- 「고구려 모두루총의 묵서 묘지 연구」(박미희, 대전대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5)
- 「扶餘國의 境域과 그 變遷」(盧泰敦, 『國史館論叢』3,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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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跋高句麗大兄冉牟墓誌兼論高句麗都城之位置」( 勞幹,『歷史言語硏究集刊』11,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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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高句麗の金石文-硏究の狀況と課題-」(田中俊明, 『朝鮮史硏究會論文集』18, 1981)
- 「牟頭婁一族と高句麗王權」(武田幸男, 『朝鮮學報』99·100 합집, 1981)
- 「高句麗牟頭婁墓誌の再檢討」(佐伯有淸, 『史朋』7,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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