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자(大使者)는 고구려시대에 사자(使者)에서 상향 분화하여 성립한 관등이다. 국왕이 수여한 사자를 대가의 사자와 차별화하는 과정에서 성립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고구려 중후기 관등제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대사자는 다시 태대사자와 대사자로 분화하였고, 12등(또는 13등)의 체계로 정립된 고구려 후기 관등제에서 제6위의 관등이었다.
고구려의 관등으로 사자(使者) 관등이 분화하여 성립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고구려본기에서 대사자(大使者)를 수여한 사례는 191년(동천왕 13)에 을파소(乙巴素)를 천거한 동부(東部)의 안류(晏留)가 처음인데, 이 무렵 왕권이 강화되고 국가 기구를 확대 개편하는 과정에서 왕권을 뒷받침하는 사자 관등이 분화되었다고 본다.
『삼국지(三國志)』 동이전(東夷傳) 고구려조에는 국왕 직속의 사자가 대가(大加)의 사자보다 상위의 서열로 대우받았다고 전해지는데, 국왕이 수여한 국가 차원의 사자에 대해 차별적 지위를 부여하기 위하여 대사자 관등이 성립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부여(夫餘)의 관제에서도 사자에서 분화된 대사자, 대사 등이 확인되는데, 고구려 관제가 부여 관제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려준다.
대사자와 사자로 분화된 사자계 관등은 중후기 고구려 관등제의 정비 과정에서 더욱 세분화되어 형계(兄系) 관등과 함께 고구려 관등 체계의 한 축을 담당하였다. 사자에서 상향 분화된 대사자는 다시 태대사자(太大使者)와 대사자로 분화되었고, 하위의 사자 역시 발위사자(拔位使者), 상위사자(上位使者)로 분화된 것으로 이해된다. 12등, 또는 13등의 체계로 정립된 고구려 후기의 관등제 속에서 대사자는 제6위의 관등이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한편 자료의 계통에 따라 사자를 사(奢)나 상(相)으로 표기하기도 하는데, 『 위서(魏書)』의 태사(太奢), 『한원(翰苑)』의 대사(大奢), 『삼국사기』 직관지의 종대상(從大相)은 모두 대사자의 이칭(異稱)이다. 또 능오리산성의 석각(石刻)에서 보이는 소대사자(小大使者) 역시 대사자의 이칭으로 파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