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동이전에 고구려를 구성한 5부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중국 사서에서 계루부(桂婁部)와 함께 고구려를 구성한 4개의 ‘노부(奴部)’는 『삼국사기(三國史記)』 고구려본기에 기록된 ‘나부(那部)’에 대응하는 것으로 파악되는데, 순노부는 대응하는 나부를 찾기가 어렵다. 다른 3개의 나부가 명칭이나 역사적 성격을 바탕으로 대응되기 때문에, 거기서 제외된 환나부가 순노부와 동일한 실체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국가체제가 정비되면서 그 본래의 명칭 외에도 동부(東部) · 좌부(左部) · 상부(上部) · 청부(靑部)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고구려 중기와 후기의 사료에서 방위명 부와 고구려 초기 5부를 대응시켜 이해하는 서술이 보이지만, 이는 후대의 착오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순노부는 비류나부로 추정하는 소노부나 연나부로 추정하는 절노부보다 세력이 약하여 비교적 일찍 계루부의 통제력이 강하게 미쳤을 것으로 생각된다.
태조왕 대에 환나부 출신의 패자(沛者) 설유(薛儒)로 하여금 주나(朱那)를 정벌하게 하거나, 차대왕 대에 환나부 출신 우태(于台) 어지류(菸支留)를 좌보(左輔)로 임명하고 대주부(大主簿)로 관등을 올려주었다. 이러한 사례들은 환나부로 추정되는 순노부가 비교적 일찍 왕권과 연결되는 양상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