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右輔)와 함께 고구려 초기 국정 운영을 주도한 최고위 관직으로 파악된다. 좌보에 임명된 인물들은 패자(沛者), 대주부(大主簿) 등 고위 관등(官等)의 대가(大加)들이었다. 우보에서 좌보로 승진한 사례로 보아, 좌보가 상위의 관직으로 보인다. 기록에서 좌보는 대무신왕 대에 처음 보이는데, 그에 앞서 유리왕 대에 대보(大輔) 협보(陜父)라는 인물이 확인된다.
이에 좌보와 우보가 대보에서 분화된 관직일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좌보와 우보는 신대왕 즉위 이후 국상(國相)으로 전환되었다. 좌보와 우보는 군국(軍國)의 일을 관장하고 정사(政事)에 참여하였다고 한다. 좌 · 우보는 국왕이 제가(諸加)와 구분되는 초월적 지위를 확립하고, 국왕 아래 각 나부의 지배층이 공동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나부체제(나부통치체제)의 성립을 나타내는 관직으로 파악된다.
계루부 출신 외에 나부 출신들도 좌 · 우보에 임명되었던 사실이 근거로 제시된다. 좌보와 우보는 계루부의 대표와 나부의 대표가 한 자리씩 나누어 맡았다고 보기도 하고, 초기(대무신왕 대)에는 왕의 측근인 계루부 출신이 전담하였다가 차대왕 대 이후 나부 출신이 함께 임명되는 것으로 변화하였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이러한 차이는 연구자마다 고구려 통치체제의 변화 시점을 다르게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후자의 견해에서는 좌 · 우보의 역할이 초기에는 주로 국왕을 보좌하면서 계루부 차원의 업무를 처리하는 데 집중되었다가, 국왕이 나부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고 나부 출신을 좌 · 우보에 임명하면서 점차 국정운영의 실무를 총괄하는 것으로 변화되었다고 본다.
좌 · 우보제의 시행이 계루부와 나부 지배층이 제가회의를 통해 공동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나부체제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보지 않고, 좌 · 우보는 제가회의를 견제하면서 군신회의를 통해 국왕 주도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는 신료의 대표자였다고 파악하는 견해도 있다. 한편 좌 · 우보제를 영역이나 지배층을 좌우로 나누어 편제하는 북방 유목 국가의 전통과 연관지어 이해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