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무신왕 ()

고대사
인물
삼국시대 고구려 제3대(재위: 18~44) 왕.
이칭
시호
대해주류왕(大解朱留王), 대주류왕(大朱留王)
인명
무휼(無恤)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4년(유리왕 23)
사망 연도
44년(대무신왕 27)
주요 관직
고구려 왕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대무신왕은 삼국시대 고구려 제3대(재위: 18~44) 왕이다. 대해주류왕, 대주류왕이라고도 하며, 이름은 무휼이다. 아버지는 유리왕, 어머니는 다물국왕 송양의 딸이다. 부여를 공격하여 대소왕을 죽였으며, 주변 세력에 대한 정복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여 개마국과 구다국, 낙랑국 등을 병합하였다. 또한, 우보와 좌보를 처음으로 임명하는 등 통치 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힘썼다.

정의
삼국시대 고구려 제3대(재위: 18~44) 왕.
가계 및 인적 사항

대무신왕(大武神王)은 일명 대해주류왕(大解朱留王) 또는 대주류왕(大朱留王)이라고도 한다. 재위 기간은 서기년 18∼44년이다. 이름은 무휼(無恤)이다. 아버지는 유리왕이며, 어머니는 다물국왕(多勿國王) 송양(松讓)의 딸이다. 14년(유리왕 33) 11세 때 태자로 책봉되었다가 15세에 즉위하였다. 44년에 사망하였으며, 대수촌원(大獸村原)에서 장사지냈다.

주요 활동

태자가 되기 전인 13년(유리왕 32) 겨울 11월 부여가 쳐들어오자 적은 군사로 복병을 써서 이를 격퇴하였다. 재위 초반에도 부여와의 관계에서 여러 사건이 있었다. 21년(대무신왕 4) 부여를 공격하기 위해 출발하는 과정에서 괴유(怪由), 마로(麻盧) 등이 따르기를 청하자 이를 허락하였고, 22년(대무신왕 5) 2월에는 부여 남쪽으로 진군하여 대소왕(帶素王)을 죽였으나, 정벌에는 실패하였다. 같은 해 4월에는 부여 왕 대소의 동생이 압록곡에 와서 갈사국을 세웠고, 7월에도 부여 왕의 사촌 동생이 투항해 와 연나부에 안치하였다.

부여와의 관계 외에도 주변 세력에 대한 정복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26년(대무신왕 9) 10월에는 압록강 상류 방면의 개마국(蓋馬國)을 정벌하여 군현으로 삼았고, 12월에는 구다국(句茶國)의 항복을 받았다. 30년(대무신왕 13) 가을 매구곡(買溝谷) 사람 상수(尙須) 등이 투항하였고, 32년(대무신왕 15)에는 호동왕자(好童王子)의 활약으로 최리의 낙랑국(樂浪國)을 멸망시켰다.

이외에도 28년(대무신왕 11) 후한 요동군이 침입해 왔을 때에는 송옥구(松屋句)을두지(乙豆智) 등의 지략으로 이를 물리쳤고, 32년(대무신왕 15)에는 중국 후한(後漢)의 황제인 광무제(光武帝)에게 사신을 보내 왕호(王號)를 다시 인정받았다.

한편, 건국 초기 고구려의 통치 체제를 확립하기 위해서도 힘썼다. 25년(대무신왕 8)과 27년(대무신왕 10)에는 각각 우보(右輔)좌보(左輔)를 처음으로 임명하였다. 좌우보제의 성립은 계루부(桂婁部) 왕권의 성장 과정에서 기존 대보(大輔) 관직이 분화한 것으로 파악되지만, 이를 나부(那部) 사이의 공동 정치 운영 방식으로 보기도 한다.

32년(대무신왕 15)에는 동명왕(東明王)의 옛 신하였던 구도(仇都) · 일구(逸苟) · 분구(焚求) 등 3인의 비류부장(沸流部長)을 서인(庶人)으로 삼으며 탐학한 대신들을 축출하였다.

참고문헌

원전

「광개토왕릉비(廣開土王陵碑)」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지(三國志)』
『후한서(後漢書)』

단행본

여호규, 『고구려 초기 정치사 연구』(신서원, 2014)
임기환, 『고구려 정치사 연구』(한나래, 2004)
노태돈, 『고구려사 연구』(사계절, 1999)

논문

임기환, 「고구려와 낙랑군의 관계」(『한국고대사연구』 34, 2004)
김현숙, 「고구려 전기 나부통치체제의 운영과 변화」(『역사교육논집』 20,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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