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삼국시대 고구려 제3대(재위: 18~44) 왕.
가계 및 인적 사항
주요 활동
부여와의 관계 외에도 주변 세력에 대한 정복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26년(대무신왕 9) 10월에는 압록강 상류 방면의 개마국(蓋馬國)을 정벌하여 군현으로 삼았고, 12월에는 구다국(句茶國)의 항복을 받았다. 30년(대무신왕 13) 가을 매구곡(買溝谷) 사람 상수(尙須) 등이 투항하였고, 32년(대무신왕 15)에는 호동왕자(好童王子)의 활약으로 최리의 낙랑국(樂浪國)을 멸망시켰다.
이외에도 28년(대무신왕 11) 후한 요동군이 침입해 왔을 때에는 송옥구(松屋句)와 을두지(乙豆智) 등의 지략으로 이를 물리쳤고, 32년(대무신왕 15)에는 중국 후한(後漢)의 황제인 광무제(光武帝)에게 사신을 보내 왕호(王號)를 다시 인정받았다.
한편, 건국 초기 고구려의 통치 체제를 확립하기 위해서도 힘썼다. 25년(대무신왕 8)과 27년(대무신왕 10)에는 각각 우보(右輔)와 좌보(左輔)를 처음으로 임명하였다. 좌우보제의 성립은 계루부(桂婁部) 왕권의 성장 과정에서 기존 대보(大輔) 관직이 분화한 것으로 파악되지만, 이를 나부(那部) 사이의 공동 정치 운영 방식으로 보기도 한다.
32년(대무신왕 15)에는 동명왕(東明王)의 옛 신하였던 구도(仇都) · 일구(逸苟) · 분구(焚求) 등 3인의 비류부장(沸流部長)을 서인(庶人)으로 삼으며 탐학한 대신들을 축출하였다.
참고문헌
원전
- 「광개토왕릉비(廣開土王陵碑)」
- 『삼국사기(三國史記)』
- 『삼국지(三國志)』
- 『후한서(後漢書)』
단행본
- 여호규, 『고구려 초기 정치사 연구』(신서원, 2014)
- 임기환, 『고구려 정치사 연구』(한나래, 2004)
- 노태돈, 『고구려사 연구』(사계절, 1999)
논문
- 임기환, 「고구려와 낙랑군의 관계」(『한국고대사연구』 34, 2004)
- 김현숙, 「고구려 전기 나부통치체제의 운영과 변화」(『역사교육논집』 20, 1995)
주석
-
주1
: 중국 후한(後漢)의 제1대 황제(B.C.6?~A.D.57). 본명은 유수(劉秀). 자는 문숙(文叔). 왕망의 군대를 무찔러 한나라를 다시 일으키고 낙양에 도읍하였다. 재위 기간은 25~57년이다. 우리말샘
-
주2
: 고구려의 시조(B.C.58~B.C.19). 성은 고(高). 이름은 주몽 또는 추모(皺牟). 해모수의 아들. 동부여의 금와왕의 아들 대소(帶素)의 모해(謀害)를 피하여 졸본에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고구려라 하였다. 재위 기간은 기원전 37년에서 기원전 19년까지이다. 우리말샘
-
주3
: 비류나부, 즉 소노부(消奴部)의 우두머리
-
주4
: 탐욕이 많고 포학함. 우리말샘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