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류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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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지명
삼국시대, 고구려가 건국하고 도읍을 정하는 과정에서 중심에 위치한 강(江).
지명/고지명
지역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지린성(吉林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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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비류수는 삼국시대에 고구려가 건국하고 도읍을 정하는 과정에서 중심에 위치한 강(江)이다. 오늘날 중국 랴오닝성과 길림성에 걸쳐 흐르는 훈장[渾江]에 비정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비류수 상류에 위치한 송양의 비류국, 고구려 5부 중 하나인 비류부 등과 관련하여 볼 때 고구려 초기 역사 전개 과정에서 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목차
정의
삼국시대, 고구려가 건국하고 도읍을 정하는 과정에서 중심에 위치한 강(江).
위치

중국의 랴오닝성[遼寧省]과 지린성[吉林省]에 걸쳐 흐르는 훈장[渾江]에 비정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나, 그 지류인 푸얼강[富爾江]으로 보기도 한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고구려본기에 서기전 37년에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하고 도읍을 정하는 과정에서 등장하며, 21년(대무신왕 4)에 부여를 정벌할 때 고구려군의 이동 경로 중에도 포함되어 있다.

그렇지만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삼국의 이름만 있고 그 위치가 상세하지 않은 곳[삼국유명미상지분(三國有名未詳地分)]’의 명단 중에 기재되어 있어, 『삼국사기』 편찬 당시 찬자는 비류수의 정확한 위치를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삼국지』 동이전 고구려조에서는 이이모(伊夷模)와의 왕위 계승 전쟁에서 패배한 발기(拔奇) 세력이 돌아와 거주한 곳으로 나오며, 관구검전에서는 조위(曹魏)의 침공과 관련하여 고구려군의 진군 경로에서 등장한다.

의의 및 평가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하는 과정에서 도읍으로 정한 졸본천 유역은 비류수에 속해 있는 특정 구간에 대한 지명으로 이해된다. 아울러 비류수의 상류에 자리잡고 있던 비류국(沸流國)의 존재까지 감안하여 본다면, 비류수는 고구려 초기 역사 전개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지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 지역과 관련된 고고학적 발굴 성과 역시 비류수 및 그 지류의 양안에 펼쳐진 평지를 따라 정치 집단이 형성되며 점차 국가로 발전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참고문헌

원전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지(三國志)』

단행본

여호규, 『고구려성 I』-압록강 중상류편(국방군사연구소, 1998)

논문

권순홍, 「고구려 도성 연구」(성균관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9)
이준성, 「고구려의 형성과 정치체제 변동」(연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9)
기경량, 「고구려 왕도 연구」(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7)
노태돈, 「고구려초기 천도에 관한 약간의 논의」(『한국고대사연구』 68, 한국고대사학회,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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