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인(譯人) 출신 중낭장(中郎將) 곽해룡(郭海龍)의 건의로 1384년에 설치되었다. 설치목적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당시 극에 달한 왜구의 창궐에 대비하기 위해서라고 생각되며, 우왕 14년에 결행되는 요동공격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 무예도감의 설치가 역인출신 무관에 의하여 건의된 사실과 설치 후 한 달도 못 되어 우왕이 마암(馬巖)에 나아가 강무(講武)를 관람하며 내린 교시에서, 이 일이 국가의 대사임을 강조한 점은 4년 뒤 단행한 요동공격에 대비한 군사력 증강을 위한 예비조처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 직제에 대해서는 사(使)가 있었다는 것만이 문헌에 보이며, 그 조직과 존속기간 및 조선시대로의 계승문제는 확인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