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3년(고종 10) 흥선대원군으로부터 정권을 넘겨받아 친정(親政)을 하게 된 고종은 궁궐수비를 강화하기 위하여, 1874년 무위청(武衛廳)과 훈련도감(訓鍊都監)에서 500명을 새로 뽑아 훈련도감 지휘하에 1회 100명씩 5교대로 궁중숙위를 담당하게 하였다.
그 해 6월 20일 무위소를 창설하여 이의 책임자를 무위도통사(武衛都統使)라고 하고, 조영하(趙寧夏)를 이에 임명하여 숙위군을 지휘, 감독하게 하였다. 그 뒤 각 군영에서 가장 우수한 군병을 차출하여 무위소는 1,200여 명의 강군(强軍)이 되었다.
무위도통사는 금위영(禁衛營)·어영청(御營廳)·훈련도감 등 3영의 제조(提調)를 겸하였고, 용호영(龍虎營)과 총융청(摠戎廳)까지도 통솔하였으며, 한성부(漢城府) 치안업무까지 관여하였다.
1879년 북한산성에 있던 경리청(經理廳)을 이에 소속시키고, 총융청 소속의 북한성관장(北漢城管將) 이하 모든 관원을 무위소에 소속시켜 무위소는 궁궐숙위뿐만 아니라 수도방위업무까지 담당하게 되었다. 1881년 무위영(武衛營)으로 개칭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