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장관전서(靑壯館全書)』 사소절(士小節)에는 “먼저 짧고 작은 흰 치마를 입고 그 위에 치마를 입는데, 무족(無足)에 오합(五合) 또는 칠합(七合)의 호칭이 있다.”고 하였다.
『조선여속고(朝鮮女俗考)』에서 보면 이에 주하여 “무족상(無足裳)은 짧은 데에 차가 있어 이에 따라 새[升]의 홉[合]과 같이 오합·칠합의 이름이 있는데, 접은 단은 십합위승식(十合爲升式)의 층을 두어 5, 6겹으로 접어서 무릎 가까이에서 위의 치마를 버티었다.”고 하였다.
이 무족상 곧 무지기는 고려 때의 부인들이 입었다고 하는 선군(旋裙)과 동일한 제도의 치마로서, 현대의 페티코트(petticoat)와 같은 구실을 하였던 것으로, 겉치마를 푸하게 버티기 위한 것이었다. 무지기는 모시 12폭으로써 3합·5합·7합 등 홀수로 층을 이루어 한 허리에 단 것이다.
허리에서 무릎까지가 가장 긴 길이이며, 층과 층 사이의 단에는 나이 젊은 사람은 각색으로, 나이가 지긋한 사람은 단색으로 엷은 물감을 들여 흡사 무지개와 같았으므로, 이를 이름지어 무지개라 하였다가 후에 무지기라 하였고, 또한 한자화하여 무족(無足)이라 하였다고 본다. 정장함에 있어 정식으로는 이 무지기로써 허리를 버티고 대슘치마로써 아래를 버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