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북한 강원도 문천시 남창리에 있는 널무덤이 단독으로 분포하는 초기철기시대 분묘유적.
발굴경위 및 결과
무덤 구덩이가 있는 곳은 지표에서 약 40㎝ 깊이까지 적갈색 점토층이었고, 그곳에서 다시 약 20㎝ 깊이까지 황갈색 흙이 깔린 상태였다. 널무덤을 확인하고, 그 내부에서 청동 무기 2점을 수습하였다.
형태와 특징
수습 유물로는 한국식의 세형동검(細形銅劍) 1점과 세형동과(細形銅戈) 1점이 있다. 세형동검은 칼몸 아래쪽 부분이 평면 사다리꼴을 띠고, 등대 마디가 일자형에 가까워서 발전 단계의 특징을 나타낸다. 전체 길이는 28㎝, 너비 3.3㎝이다.
세형동과는 관부(關部)가 뚜렷하며, 투공부의 평면 형태가 원형에 가까워진 것이어서 역시 발전 단계 또는 철기 공반(公班) 단계의 특징을 나타낸다. 전체 길이 25㎝, 너비 7.4㎝이다.
연대는 동검과 동모가 모두 발전 단계에 주로 확인되는 형식학적 특징을 나타내고 있어 서기전 2세기 전반 전후 무렵으로 추정된다. 다만, 북한 학계는 금야용산리유적, 북청하세동리유적 등의 청동 유물과 비교하여 서기전 3세기 말~서기전 2세기 초 무렵으로 보고 있다.
의의 및 평가
위만조선 멸망 이후 설치되었다는 임둔군의 화려현(華麗縣)과 야두매현(邪頭昧縣)이 각각 이곳으로 비정된다. 그러므로 문천남창리유적은 임둔 세력의 단위 정치체와 관련된 유적으로 볼 수 있다.
참고문헌
논문
- 이후석, 「요동~북한지역의 세형동검문화와 고조선」(『동북아역사논총』 44, 동북아역사재단, 2014)
- 趙鎭先, 「北韓地域 細形銅劍文化의 發展과 性格」(『한국상고사학보』 47, 한국상고사학회, 2005)
- 원산력사박물관, 「문천군 남창리 움무덤」(『고고학자료집』 6, 과학백과사전출판사, 1983)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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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구덩이를 파고 시체를 직접 넣거나 목관이나 목곽에 시체를 넣고 그 위에 흙을 쌓아 올린 무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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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나무 관을 고정하고 보강하기 위해서 주위를 돌로 쌓거나 채워 두는 무덤 형식.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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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우리나라에서 출토되는 동검의 하나. 평양을 비롯하여 전국의 고인돌ㆍ돌무덤 따위 고분의 부장품(副葬品)으로서 남만주ㆍ연해주ㆍ시베리아ㆍ북중국에서도 발견되며, 한국식 동검이라고도 한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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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창날의 길이가 짧고 너비가 좁은, 놋쇠로 만든 창. 초기 철기 시대에 썼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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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대동강 유역에 있었던 고조선의 마지막 나라. 기원전 194년에 위만이 준왕(準王)을 몰아내고 세운 나라인데, 기원전 108년 우거왕 때 한나라의 무제에게 망하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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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중국 한(漢)나라가 위만 조선을 정벌하고 설치한 한사군의 하나. 그 위치에 대하여서는 함경도 부근이라는 설과 랴오둥(遼東)ㆍ랴오시(遼西) 지방이라는 설 등이 있는데, 고구려 광개토 대왕 때에 완전히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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