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장산 북동쪽의 언덕 끝에 있는 재궁동(재궁골)에 자리한다. 이 지점은 동쪽으로 흐르는 남천강 남쪽 지류변에 해당한다. 1965년 봄에 과수원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청동 유물이 확인됨에 따라 알려졌다. 같은 해에 원산력사박물관이 현장 조사를 실시하였다.
무덤 구덩이가 있는 곳은 지표에서 약 40㎝ 깊이까지 적갈색 점토층이었고, 그곳에서 다시 약 20㎝ 깊이까지 황갈색 흙이 깔린 상태였다. 널무덤을 확인하고, 그 내부에서 청동 무기 2점을 수습하였다.
유물 출토 지점 바닥에는 어떤 시설이나 나무질 흔적이 발견되지 않아 단순 널무덤으로 추정되었고, 구덩이는 이미 파괴되어 구체적인 구조를 알 수 없었다. 정식 발굴 조사를 통해 확인되지 않은 것이어서 나무널무덤일 가능성도 완전 배제할 수 없다.
수습 유물로는 한국식의 세형동검(細形銅劍) 1점과 세형동과(細形銅戈) 1점이 있다. 세형동검은 칼몸 아래쪽 부분이 평면 사다리꼴을 띠고, 등대 마디가 일자형에 가까워서 발전 단계의 특징을 나타낸다. 전체 길이는 28㎝, 너비 3.3㎝이다.
세형동과는 관부(關部)가 뚜렷하며, 투공부의 평면 형태가 원형에 가까워진 것이어서 역시 발전 단계 또는 철기 공반(公班) 단계의 특징을 나타낸다. 전체 길이 25㎝, 너비 7.4㎝이다.
연대는 동검과 동모가 모두 발전 단계에 주로 확인되는 형식학적 특징을 나타내고 있어 서기전 2세기 전반 전후 무렵으로 추정된다. 다만, 북한 학계는 금야용산리유적, 북청하세동리유적 등의 청동 유물과 비교하여 서기전 3세기 말~서기전 2세기 초 무렵으로 보고 있다.
북한 강원도 문천시 일대는 위만조선(衛滿朝鮮) 시기에 임둔(臨屯) 세력의 분포권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이때 유행했던 세형동검 문화 양상으로 보면 상위 거점은 금야만 일대에 형성되었는데, 금야와 문천 일대가 이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위만조선 멸망 이후 설치되었다는 임둔군의 화려현(華麗縣)과 야두매현(邪頭昧縣)이 각각 이곳으로 비정된다. 그러므로 문천남창리유적은 임둔 세력의 단위 정치체와 관련된 유적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