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입실리유적은 경상북도 경주시 입실리에 있는 원삼국시대 진한의 지배층 무덤유적이다. 1920년 철도공사 과정에서 청동 유물이 다수 발견되어 알려졌다. 유물 수량으로 보아 가까이에 있는 여러 기의 목관묘에서 나온 것일 가능성이 높다. 무기류와 의기류, 마구류 등의 청동 유물들이 다수 보이지만, 철기와 토기도 소량 확인된다. 위만조선 또는 낙랑 계통 유물들이 포함되어 있어 서북한계 주민들에 의한 문화 전파 또는 진한 정치체의 문화 교류 양상을 잘 보여 준다.
경주입실리유적(慶州入室里遺蹟)은 1920년 8월 경주울산 간 철도 부설공사 과정에서 구리칼, 구리창 등의 청동 유물들이 한꺼번에 발견되면서 알려졌다. 발견 장소는 동해남부선 역사(驛舍)의 북쪽 언덕 아래쪽이다. 일본학자 우메하라 스에지〔梅原末治〕 등이 현장 조사를 실시하였는데, 조사 기록이나 유물 수량 등을 고려할 때 유물들은 가까이에 있는 23개 지점에서 찾았을 가능성이 높다.
무덤은 목관묘(木棺墓)로 추정되나, 무덤 구덩이가 파괴되어 구체적인 구조와 출토 정황은 알 수가 없다. 출토 유물에는 청동기가 가장 많고, 철기와 토기도 소량 확인된다. 청동기에서는 무기류와 마구류가 주로 확인되며, 의기류도 소량 확인된다.
우메하라 스에지의 보고 자료에 따르면 무기류에서는 세형동검(細形銅劍) 6점, 구리창 4점, 구리꺾창 2점, 동병철검(銅柄鐵劍)의 청동검파(靑銅劍把) 1점 등이 확인되었고, 의기류에서는 다뉴세문경(多鈕細文鏡) 1점, 청동 간두령(竿頭鈴) 2점 등이 확인되었다.
또한 마구류에는 대소형의 동탁(銅鐸) 7점, 동탁 부속 1점, 동환(銅環) 1점, 고깔동기 1점, 청동 쌍두령(雙頭鈴) 1점, 청동 차축두령(車軸頭鈴) 1점, 병부동령(柄附銅鈴) 1점, 원형 장식 1점 등이 확인되었다. 이외에도 철기류에는 철검 조각과 판상철부(板狀鐵斧) 1점이 확인되었고, 토기류에서는 소형 용기 2점이 확인되었다.
유적 연대는 초기 철기시대에만 유행하는 다뉴세문경과 ‘함주조양리유적’ 출토품과 비교되는 청동 간두령은 제작 시기가 서기전 2세기 대까지 올라가는 자료이다. 다만, 유문식의 구리창과 구리꺾창이 다수 확인되며, 유문식의 소형 동탁 5점은 고깔동기, 판상철부 등과 함께 그보다 늦은 시기에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유물들의 껴묻거리 시기는 서기전 1세기경으로 추정된다.
유적에서 확인되는 유문식의 구리창과 구리꺾창은 물론 청동 거여구(車輿具)와 청동검파, 철검 등은 서북한 지역의 위만조선(衛滿朝鮮)이나 낙랑(樂浪) 계통 무덤에서 먼저 확인되는 기종이다.
특히 유문식의 소형 동탁이나 고깔동기 등은 서기전 2세기 후반 이후 출현하는 전형적인 한식 유물이다. 또한 중세형의 대형 구리창은 일본보다 영남 지역에서 제작했을 가능성이 높고, 일부 청동 무기에는 일본 규슈〔九州〕 지역으로 연결되는 구분 연마 흔적까지 확인된다.
그러므로 무덤 주인공은 위만조선 멸망 무렵 내려왔던 서북한계 주민이나 낙랑과의 교역을 주도했던 경주 일대 지배층의 일원으로 추정된다. 이와 같이 '경주입실리유적'의 출토 유물에는 서북한 지역과 영남 지역 진한(辰韓) 정치체의 문화 교류 양상이 잘 반영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