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룡산의 남쪽으로 뻗어 내린 구릉 끝자락에 자리한다. 이 지점은 함흥평야가 널리 조망되는, 평지보다 약 10m 정도 높은 언덕이다.
1965년 7월 언덕 남쪽 끝의 흙을 파다 무덤구덩이를 발견하면서 함흥력사박물관이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무덤구덩이 윤곽선의 밖은 적갈색의 점토층이었고, 그 안은 푸른색의 흙이었다. 널무덤을 확인하고, 그 내부에서 청동 유물과 철기, 토기 등의 유물 10여 점을 수습하였다.
무덤구덩이는 평면 장방형이며, 주축 남북 방향이다. 규모는 남북 길이 약 220㎝, 동서 너비 약 70㎝, 깊이 약 147㎝이다. 무덤구덩이 벽은 거의 수직으로 굴착하였으며, 바닥에는 작은 널돌 조각들을 쭉 널어서 깔고 그 틈 사이에는 점토를 채워서 편평하게 고정시킨 것이 특징이다.
널무덤으로 추정되었으나 바닥에서 연한 회청색 점토면이 확인되고 부장 유물 배치 양상 등을 고려할 때, 나무널무덤일 가능성도 있다. 머리향은 북쪽으로 추정된다.
부장 유물은 크게 세 곳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모두 11점이 확인되었다. 바닥 남서쪽에서는 세형동검(細形銅劍) 2점과 철광석제 칼자루끝장식 1점, 세형동모(細形銅鉾) 2점과 세형동과(細形銅戈) 1점이 출토되었고, 바닥 북서쪽에서는 다뉴세문경(多鈕細紋鏡) 2점이 출토되었다. 또한 북동단에서는 주조철부(鑄造鐵斧) 1점과 그 아래에서 민무늬토기 2개체분이 수습되었다.
세형동검 2점은 등대 마디와 칼허리가 분명하여 모두 ‘한국식’에 해당된다. 짧은 것은 칼허리에 대응되는 위치에만 일자형의 마디가 있는 이른 형식이고, 긴 것은 기부(基部)까지 일자형의 등대 마디가 형성되어 있는 늦은 형식이다. 각각 길이 27.0㎝와 33.0㎝이다. 칼자루끝장식은 입주부십자형으로 돌기가 뚜렷하고, 입주부의 머리 끝이 작은 것이어서 발전 단계 또는 철기 공반 단계에 주로 확인되는 형식이다. 크기는 길이 6.2㎝, 너비 4.7㎝이다.
세형동모와 세형동과는 모두 '한국식'에 해당되며, 발전 단계 이후 확인되는 기종이다. 동모 2점은 형태와 크기가 비슷한데, 길이 22.0㎝, 너비 4.4㎝이다. 동과는 서북한 지역의 것과 비슷하게 창몸이 큰 것이 특징이며, 길이 27.0㎝이다.
다뉴세문경은 2점 모두 지름 8㎝의 소형이다. 꼭지가 3개이며, 삼각문을 단위로 한 내구와 외구의 2구식인 점이 특징이다. 남한 지역의 장수남양리 4호묘, 함평초포리고분군의 돌무지나무널무덤과 유사하여 주조 철기 공반 단계의 서기전 2세기 전반경으로 편년된다.
주조철부는 공부 단면이 장방형과 사다리꼴 중간 형태를 나타내는 점이 특징이다. 남아 있는 형태는 길이 9.6㎝, 투겁 너비 5.6㎝, 투겁 두께 2.0㎝이다. 무덤의 축조 시기는 출토 유물 중에 다뉴세문경이나 주조철부가 서기전 2세기 전반경을 중심으로 유행하는 것이어서 이 무렵으로 추정할 수 있다.
동북한 지역의 초기 철기시대 무덤에서 금속 유물을 10점이나 부장하는 예는 매우 드물다. 그러므로 함흥이화동유적의 널무덤은 서기전 2세기경 함흥 일대 최고 수장급의 무덤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무기류와 의기류로 구성된 것을 통해 무덤 주인공은 군사적인 권위를 크게 내세우는 한편 종교적인 권위 역시 강조하였다고 할 수 있다.
함경남도 함흥 일대는 위만조선(衛滿朝鮮) 시기에 임둔(臨屯) 세력의 영향권에 포괄되는 지역으로 추정되며, 위만조선 멸망 이후에는 부조현(夫租縣)이 설치되는 지역으로 추정되고 있다. 주변에는 관련 유적들이 다수 분포하고 있어 함흥 일대는 임둔이나 부여(옥저) 세력의 거점 지역으로 추정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