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높은 데서 떨어지거나 도랑으로 빨리 흐르면서 수레바퀴 모양의 틀을 돌리면 틀 가운데 박힌 굴대가 따라 돌면서 맷돌 위짝을 회전시킨다. 그리고 맷돌 위에 걸린 깔대기 모양의 통에서 곡식이 위짝의 아가리로 조금씩 흘러들어가 가루가 되고 겉 껍질이 벗겨져 나온다.
위짝을 손으로 돌리는 맷돌에 비하여 위아래짝이 매우 크고 더구나 물의 힘을 빌리는 까닭에 많은 양의 곡식을 손쉽게 찧거나 빻을 수 있다. 곡물에 따라 통에서 떨어지는 양을 조절하며 위짝과 아래짝 사이의 틈을 넓히거나 좁혀서 알맞게 빻는다. 이 밖에 흐르는 물의 양을 줄이거나 늘리는 방법을 쓰며 물이 워낙 적을 때에는 2∼5m의 높이에서 떨어뜨려서 힘을 증가시킨다.
물맷돌에 관한 기사가 실린 가장 오랜 문헌은 『고려사』로서 충렬왕 3년(1276) 기축조에 “왕과 공주가 물맷돌을 구경하였다(王與公主觀水磑).”는 단 한 줄 뿐이며 이후에 나온 농서를 비롯한 다른 문헌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중국의 경우 수나라와 당나라 때 널리 보급 되었고 오늘날에도 중국의 신장성(新疆省) 위그르자치구를 비롯하여 쓰촨성(四川省)·구이저우성(貴州省) 일대와 네팔, 중앙 및 서남아시아 등지에서 사용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일본서기』에 고구려 담징(曇徵)이 이것을 만들어 주었다는 기록이 있는 점 등으로 미루어 우리도 이미 고구려 때부터 써왔을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앞에서 든 『고려사』의 내용은 물맷돌을 처음 만들었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연유로 쓰지 않던 것을 다시 세운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중국이나 기타 지역에 비해 밀가루 음식을 덜 먹었을 뿐 아니라 절구나 디딜방아·물방아·물레방아 따위의 연장이 널리 보급되어서 물맷돌을 많이 쓰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구주(九州) 후쿠오카(福岡)시 교외의 백제 유적지로 널리 알려진 다자이후(太宰府) 간제온사(觀世音寺)에는 담징이 만들었다는 물맷돌이 지금까지 남아 있으며, 나라(奈良)도다이사(東大寺)에도 이에 관한 유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