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934년 정인표(鄭仁杓)가 창시한 종교.
연원 및 변천
전북 완주군 용진면 간중리의 미륵산 산제당에서 오주문(五呪文)으로 치성을 드린 결과, 사흘 뒤인 1934년 1월 천신으로부터 도통을 받았다고 한다.
이때부터 정인표는 미륵불의 성령이 자기에게 접응되었으므로 자신은 곧 인불(人佛)이라 자처하면서 그 길로 하산하여 과거 김형렬(金亨烈)이 이끌었던 신도들을 규합하여 미륵불교의 재기를 꾀하며 포교활동을 하다가 1938년김제 백산에서 신도공사(神道公事)를 가졌다.
이때부터 ‘일망무지(日亡無地)’라는 깃발을 들고 일본이 망하고 곧 밝은 세상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며 포교하다가 1940년 일본경찰에 검거되어 8년 언도를 받고 복역 중 광복을 맞았다. 광복 후 포교활동을 계속하고 예언이 적중함에 따라 많은 신도들이 모여들었다.
1950년정읍군 태인면 대성리에 교당(敎堂)을 짓고 미륵불영원회(彌勒佛永園會)라는 간판을 걸었다. 그는 포교활동과 더불어 아동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인재고등공민학교를 설립하고 1951년 에는 명륜고등공민학교를 인수하는 등 교화교육도 병행하였다.
또 1952년에는 미륵불을 주불로 하고 석가와 공자를 모시는 신앙의 체계를 확립하는 한편, 본부를 태인면 태흥리로 옮겨 대성미륵대장전, 명부전, 칠성전을 건립하는 등 교화의 터전을 굳게 하였다.
1955년 교조 정인표가 사망하면서 정공일(鄭公一)―한동환(韓東煥)―정휴규(鄭休圭)―김연봉(金連奉)―이원장(李沅璋)으로 교조가 이어지고 있다. 정공일 생존당시 김흥수(金興洙)가 미륵불교라는 이름으로 분파하기도 하였으나 뒤에 다시 두 파는 다시 합쳐져 미륵불교로 문교부에 등록하였다.
현황
또, 삼계도솔신장(三界兜率神將) · 용화불토왕대신(龍華佛土王大神) · 아미불상(阿彌佛像:교조 정인표)도 봉안하며 그 밖에 휴정(休靜) · 유정(惟政) · 이순신(李舜臣) · 송구봉(宋龜峰) · 김일부(金一夫) · 전명숙(全明淑:全琫準) · 최제우(崔濟愚, 호는 水雲) 등 많은 역사적 인물들을 숭배한다.
미륵불은 대도의 근원인 선기(仙氣)로서 천계탑(天階塔)에 내려와 인간의 대도를 창설한 강일순이며, 정인표는 바로 이 미륵불의 자식으로 후천을 담당할 인물이라는 것이다.
수련의 목표는 대인대의수정(大人大義守正) · 오상선행(五常善行) · 지은보은(知恩報恩)이며 중요 의례로는 춘분, 하지, 추분, 동지에 지내는 사대절후(四大節候) 치성(致誠)과 칠성(七星) 치성, 명부(冥府) 치성 등이 있다. 주요 경전은 ≪교리정전 敎理正典≫ · ≪삼강대전 三綱大全≫ · ≪명관대전 明觀大全≫ 등이 있다.
참고문헌
- 「미륵불교」(이현택, 『한국종교』 1,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71)
- 『미륵불교관』(박병재, 미륵불교총본부, 1974)
-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 외,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 『한국종교연감』(한국종교사회연구소 편저, 고려한림원,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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