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등은 나말(奈末, 奈麻)이었다. 『일본서기』긴메이(欽明) 21년(560) 9월조에 의하면, 신라는 미지기지내말을 보내어 조부(調賦)를 전하였다. 그가 귀국 후 이렇게 말하였다.
“조부의 사자는 국가의 소중한 바이나 나의 의론(義論)은 가볍고 비천한 바이오, 사자는 백성의 운명이 걸려 있는 바이나 그 뽑아쓰는 것은 비천하고 낮은 사람이니, 왕정의 폐단이 이로 인하지 않음이 없음이라. 청컨대, 양가(良家)의 자제를 뽑아서 사자로 삼고 비천한 사람으로 사자를 삼지 말도록 할 것이다.”
『일본서기』긴메이기는 신라 진흥왕, 백제 성왕과 때를 같이하는 것으로, 백제·가야 등에 관한 기사가 가장 많이 보이는 바이니, 혹은 이러한 사자의 내왕이 있었음직하나 『삼국사기』신라 진흥왕본기에는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