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10월 『백민(白民)』 추계특집호(秋季特輯號)에 그 전반부가 발표되었고, 이어 1949년 1월 신년특대호(新年特大號)에 그 후반부가 발표되었다. 광복 후의 일제의 문화적 잔재를 비판하는 풍조와 함께 친일 행위에 대한 개념규정, 아울러 당대 지식인의 고뇌 등을 다루었으며, 자기반성을 심도 있게 해부한 일종의 자전적 소설의 성격을 지닌다.
작가인 주인공은 일제강점기 하에서 피동적으로나마 한국 학생들에게 징병에 응할 것을 권유하는 연설회에 한두 차례 참석하였다. 그러나 연설회가 끝난 이후에 한국 학생들이 주인공이 유숙하는 객사로 찾아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진지한 태도로 묻자, 주인공은 일제에 협력하지 말 것을 종용한다. 그러면서도 표면적으로 징병에 응할 것을 권유한 사실에 관하여 스스로 죄책감을 느낀다.
한편, 주인공의 친구인 P신문사의 기자인 김군과 만난 자리에 전에 기자였던 윤이 나타나 친일 지식인들을 규탄한다. 윤은, 본인은 일제에 협력하지 않기 위하여 신문사를 사퇴하였다면서 일본에 협력한 지식인을 마구 통박한다. 김군은 대부분의 기자나 지식인들이 호구지책으로 일을 한 것이지 일본에 협력하기 위하여 직장을 지킨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이 부분은 개인 생활이 매우 궁핍하였던 당대 현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하겠다.
사실 윤은 부유한 가정 배경 때문에 사직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김기자는 윤의 부유함이 많은 지식인들의 곤궁한 삶과는 무관한 사실이라는 점을 아울러 일깨운다. 김군과 윤기자의 논쟁에서 주인공은 충격을 받고 낙향을 결심하나, 아내가 간곡히 사정하므로 서울에 머무르기는 하되, 바깥출입을 삼가며 지낸다.
이 때 주인공의 조카가 예고 없이 나타나, 학교가 동맹휴학이므로 조용히 공부나 하려고 왔다고 한다. 주인공은 당당하게 동맹휴학에 합세하지 않고 단체 행동에서 이탈하여 개인행동을 한 사실을 호되게 야단친다.
이 소설은 광복 당시의 친일적 과오를 양심적으로 문제 삼았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는 작품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