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치헌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 대한제국기
대한제국기 때, 궁내부특진관, 의정부찬정, 회계원경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시호효헌(孝獻)
인물/근현대 인물
  • 본관여흥(驪興)
  • 사망 연도1903년(고종 40)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44년(헌종 10)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맹수 (한국학대학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대한제국기 때, 궁내부특진관, 의정부찬정, 회계원경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여흥(驪興). 민태현(閔泰顯)의 아들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음직(蔭職)으로 청하현감(淸河縣監) 등을 역임하다가 1885년(고종 22) 9월 증광별시문과에 병과로 등제한 뒤 그해 10월 홍문관부수찬이 되었다. 이듬해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이 되었으며, 1887년 9월 사간원대사간에 임명되었다.

사간원 재임시 여러 차례 직간(直諫)을 올리고 대사간을 사임하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888년 4월 이조참의로 발탁되고 그해 8월 성균관대사성에 올랐으며, 이듬해 승정원우승지가 되었으며, 1892년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가 되었다.

1894년 고부에서 동학농민군이 봉기하여 전국적인 농민전쟁으로 비화될 즈음 지방관인 경주부윤의 외직에 있었다. 그리하여 동학농민전쟁 발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민씨척족들이 유배형을 받게 될 때 민치헌도 그해 6월 홍원현(洪原縣)에 정배되었다가 그해 9월 풀려났다.

1896년 중추원1등의관에 임명되고 칙임관2등에 서임되었으며, 1899년 궁내부특진관이 되었다. 1900년 4월 의정부찬정(議政府贊政)이 되고 이어 칙임관1등에 올랐다. 그해 7월 회계원경, 이듬해 다시 궁내부특진관과 칙임관1등에 이르렀다. 시호는 효헌(孝獻)이다.

참고문헌

  • - 『고종실록(高宗實錄)』

  •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 『일성록(日省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