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흥(驪興). 밀직사 민적(閔頔)의 아들이다.
충혜왕의 총애를 받아 누진(累進)하여 대언이 되었고, 희비(禧妃)의 외숙으로 권력을 남용하여 횡포가 심하였다. 5도(道)의 조사(朝士)들로부터 직세(職稅: 시골에 사는 직품있는 사람에게 물리던 세)를 거두어들이기도 하고, 배가 없는 사람들에게도 선세(船稅)를 징수하여 원성이 높았다.
선세는 뒤에 동계존무사(東界存撫使) 최창의(崔昌義)의 건의로 한때 폐지하였으나 곧 다시 징수하였다. 또, 노비를 징발하여 신궁(新宮)에 바치고, 각 지방에서 재물을 거두어들이다가 이 일이 폭로되어 거세되었으나, 다시 왕의 신임을 얻었다.
1343년(충혜왕 복위 4) 원나라 사신이 왕을 원나라로 데려갈 때 민환도 잡혀 진주로(辰州路)에 유배되었다. 뒤에 돌아와서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가 되었으며, 홍건적(紅巾賊)의 난 때 원수가 되어 총병관(摠兵官) 정세운(鄭世雲)과 이방실(李芳實) 등을 죽인 죄로 주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