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7년(중종 22)에 간행된 『훈몽자회』에는 ‘바고니’로, 1779년경에 나온 『한한청문감(韓漢淸文鑑)』에는 ‘바구레’로 올라 있다.
한편, 1827년(순조 27)경에 출간된 『임원경제지』에는 ‘바군이’로 적으면서 다음과 같은 설명을 달았다. “오늘날 서울의 시장에서 오가는 이들은 타원형의 소롱(小籠 : 바군이)을 지녔는데 무릇 생선이나 채소를 여기에 담는다. 여자들은 왼쪽 겨드랑이에 끼고 남자들은 새끼줄을 달아가지고 다닌다. 한강 북쪽에서는 대가 나지 않아 싸리껍질을 벗겨 짜 만든다.”
곳에 따라 보금치·바구리·바구미·바그미·보고니·보금지라고도 부른다. 곡물 따위의 농산물을 나르는 데 많이 쓰며 말리거나 갈무리용으로도 사용된다. 테두리에 대나무를 서너 겹 둘러서 손잡이로 쓰거나 바닥을 든든히 하려고 대쪽 서너 개를 나란히 질러두기도 한다.
이것은 허리에 끼거나 머리에 얹어 운반하지만 큰 것은 좌우에 새끼를 꿰어 어깨에 매어 나른다. 또, 조그맣게 물들인 챗가지로 무늬를 넣은 것을 꽃바구니라 하여 마른 물건을 담거나 나물 캐는 처녀들이 가지고 다니기도 한다. 요즈음은 죽세공으로 유명한 전라남도 담양지방에서 섬세한 세공을 하며 채색한 바구니를 생산, 외국에 수출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