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의 첫 작품이자 한국 최초의 창작동화이다. 1923년 개성에서 발행되던 박홍근(朴弘根)의 『샛별』지에 발표되었으나 1926년 방정환(方定煥)의 『어린이』지에 다시 발표되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박홍근이 조직한 송도소녀가극단(松都小女歌劇團)을 도와 지방을 순회하면서 「어머님의 선물」·「소년특사」등과 함께 구연(口演)했던 작품으로, 구연하면서 다듬어진 흔적이 보인다.
남쪽나라 바닷가에 바위나리라는 빨강꽃·파랑꽃·노랑꽃·흰꽃 등 영롱한 오색꽃이 피어난다. 바위나리는 나무도 새도 풀도 없는 쓸쓸한 바닷가에서 ‘세상에 제일가는/어여쁜 꽃은/그 어느 나라의 무슨 꽃일까./먼 남쪽 바닷가/감장돌 앞에/오색 꽃 피어 있는/바위나리지요’라는 노래를 날마다 부르고 울기도 하며 애타게 동무를 부른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면 남쪽 하늘에 맨 먼저 뜨는 아기별이 그 울음소리를 듣고 별나라 임금님께 다녀오겠다는 말도 하지 않고 바위나리를 찾아 내려온다. 어느덧 바위나리와 아기별은 정이 든다.
잠깐 동안만 달래주고 돌아가려던 아기별도 바위나리가 아름답고 귀여워 이야기도 하고, 달음박질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숨바꼭질도 하면서 밤 가는 줄도 모르고 놀다가 새벽이 되어 하늘 문이 닫히기 전에 하늘나라로 돌아가지만 밤이 되면 또 바닷가로 내려온다.
그러던 어느 날, 바위나리는 병이 들고 아기별은 밤새 바위나리를 간호하다 그만 하늘에 올라가는 시간을 놓쳐버린다. 하늘의 임금님은 밤마다 아기별이 나갔다 오는 것을 알고 외출 금지령을 내린다.
기다림에 지친 바위나리는 마침내 모진 바람에 바다로 휩쓸려 들어가고 밤마다 울던 아기별은 하늘에서 쫓겨나 지상으로 떨어진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아기별이 풍덩실 빠져 들어간 곳은, 오색꽃 바위나리가 바람에 날려 들어간 바로 그 위의 바다였다. 지금도 물이 깊으면 깊을수록 환하게 밝게 보이는 것은 한때 빛을 잃었던 아기별이 다시 빛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억압하는 세력이나 어른의 완고함을 왕의 폭력에 비유하여 쓰인 동화로 마해송의 현실 풍자적 동화문학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환상적 탐미성(眈美性)이 강한 작품으로 순정적인 내용의 새로운 양식을 보여 주어 우리나라 창작동화의 선구적 전형(典型)이 되었으며 봉건적 가정체제에 희생되는 아동상을 표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