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조로는 서울의 속가 가운데 휘모리잡가에 속한다. 그런데 이 「바위타령」은 보통 휘모리에 비하여 규격과 내용이 다르고, 곡조와 장단도 이채를 띠고 있다.
서두에, “배고파 지은 밥에 뉘도 많고 돌도 많다, 뉘 많고 돌 많기는 님이 안 계신 탓이로다 ……”라고 시작하여, 밥에 섞인 돌을 바위로 키워 서울을 비롯하여 각처의 이름난 바위들을 늘어놓았다.
「바위타령」은 갑오경장 이후로 관기(官妓)가 없어지고 일패(一牌)·이패(二牌)·삼패(三牌)로 나뉜 뒤 삼패들이 불러온 것으로, 요즈음에 옮겨 실은 것으로 추측된다. 여기에는 초별로 대문 안에 거리바위·문턱바위 등과 동교(東郊)의 붓바위 등을 비롯하여 동소문 밖, 자하문 밖, 백운대·승가사·필운대·남산·남문 밖·우수재·이태원·헌다리·모화관·서호정·애오개·쌍룡청·봉학정·삼개 등 서울지방의 여러 바위들을 먼저 들었다.
이어 고양·양화·김포·통진·인천·시흥·과천·수원·광주·이천·음죽·여주·발근 등 경기도 일대의 바위를 들었다. 그 다음 황해도의 금천·연안·서흥·동설령·황주를 들고 평안도로 넘어가 평양의 장경문안·서문안 그리고 순안·숙천 등지의 바위를 들었다. 다시 서울로 돌아와 경회절·서강 등지의 바위를 들어 이러한 바위들이 청대콩 들준이 밥에 들어 있다고 하였다. 결사에서는 그 밥을 먹고 누른 밥을 먹으려고 솥뚜껑을 여니 해태 한 쌍이 엉금엉금 기어 나온다고 하였다.
전체적으로 보아 과장이 심한 편이나 서민들의 어려운 삶을 노래하되, 그것을 해학적으로 풀어나간 특성이 있다. 지역적으로 보아 서울·황해도·평안도의 바위만을 든 것은 이 노래의 수용이 서울에서 이루어졌음을 반영하고 있다.
타령의 일반적인 속성이 그러하듯 여러 바위를 해학적으로 많이 열거하여 놓았다는 것이 또 하나의 특징으로 지적될 수 있다. 그리고 바위를 통하여 향수와 그것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어 자기 고장에 대한 애착도 아울러 노래한 셈이 된다.